‘미성년자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은 좁은 골목을 들어서자 불 꺼진 통유리벽이 죽 이어졌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적힌 ‘공가’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공가’는 철거를 위해 비워진 집을 뜻한다.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뉴시스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윤락가 ‘미아리 텍사스’를 찾았다.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인 집창촌이었던 이곳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발효와 집중 단속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재개발을 위한 이주 절차를 밟으며 인적이 끊긴 미아리 텍사스 곳곳에는 ‘이주 개시’ ‘상인들 삶의 터전 막무가내 쫓아내는 조합은 각성하라’ ‘성북구청은 우리 미아리 성노동자들의 이주에 대해 왜 침묵하는가’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이면도로로 나오자 머리가 짧은 중년 여성이 남성을 뒤쫓으며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년 남성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골목 한쪽에 주차된 차로 유유히 걸어갔다.
이곳에서 20여년간 일했다는 A(47)씨는 곧 있을 이주에 “막막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30대 중반에 남편과 이혼한 후 먹고 살기 위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다고 한다.
A씨는 “이젠 정말 갈 곳을 찾아야 하는데 배운 기술이 없다 보니 갈 곳도 없다. 사업에 망한 데다 최근에 몸도 아파서 남은 것 빚뿐”이라고 토로했다.
20여년간 성매매를 했다는 B(45)씨도 앞날이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그는 “미아리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처럼 나이들고 아픈 사람은 갈 곳이 없다”며 “강제로 쫓겨날 때까지 끝까지 여기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생계가 막막한 것은 성매매 여성만 아니다. 김모(77)씨는 미아리 텍사스의 여성들을 상대로 한평생 포장마차를 하며 동고동락해왔다. 그는 신장암 치료비 명목으로 지인에게 빌린 150만원을 5년째 못 갚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포장마차 의자와 이 옆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이주비 같은 건 못 받는다”며 “주소지를 강북구에 있는 교회로 해놨다”고 전했다. 포장마차 안에 장판을 깔아만든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집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서울시와 성북구가 조례에 따라 성매매 여성들의 주거비와 생계비 등 자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는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활 지원 사업 등을 해왔다.
지난 2017년 통과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 집결지에서 벗어나 더는 성매매를 하지 않을 경우, 성북구가 일정 기간 생계비와 주거 이전 비용·직업훈련·교육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21년 만들어진 서울시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같은 내용이다.
이영하 ‘보다’ 소장은 “이곳 여성들은 10대나 20대 초반에 들어와서 길게는 25년씩 있었던 분들이다. 달리 배운 기술이 없어 여기가 없어지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며 “최소한 1년에 대한 긴급 생계비와 주거비·직업훈련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이곳 성매매 여성들은 세입자도 주민도 아니기 때문에 개발이나 도시정비과정에서는 어떠한 보상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성매매 여성들은 탈업소해도 생계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다”며 자활 지원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