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난쟁이 종족 ‘호빗’. 단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판타지 속 종족은 아닌 듯 하다.
실제 호빗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과거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같인 시기에 지구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가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이들 인류가 어떻게 작은 크기로 진화하게 됐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일 학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흔적이 첫 발견된 지 약 10여년 뒤 88㎜ 길이의 새로운 팔 뼈 조각이 발굴된 바 있다. 발굴 이후 연구가 지속되면서 이 뼛조각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신체 구조를 알아내는 실마리가 됐다.
약 7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뼈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플로레스 섬에 정착하고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소형화’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게 됐다.
동물이 섬과 같은 공간에 고립돼 작은 체구로 진화하는 ‘섬 왜소화’는 진화의 역사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초 섬 왜소화 현상은 인류를 제외한 동물종(種)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4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이 공식 보고되면서 이 현상이 인류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은 섬 왜소화 현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뿐만 아니라 현생 인류보다도 작은 수준으로 소형화된 원시 코끼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섬 왜소화 현상은 공간과 먹이가 한정됐거나, 포식자의 위협이 적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발견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들의 기원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고대 인류 중 하나인 호모 에렉투스가 쓰나미나 큰 폭풍우 등을 만나 플로레스 섬에 정착하게 됐다는 설도 존재한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약 100만년 전 플로레스 섬에 도착해 약 6만년 전 즈음까지도 살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에 발견됐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유적지에서도 약 6만년 전의 화석이 함께 발견된 바 있다.
발견 초창기만 해도 이들의 형태나 키 등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후 2010년대 중반 약 7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정상적으로 작은 턱뼈와 치아 화석이 발견됐으나, 이를 통해 몸 크기를 추론하는 것은 불완전했다. 이후 조각난 뼛조각을 재구성하던 추가 연구 과정에서 일부 화석이 어깨-팔꿈치 부분인 ‘상완골’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돌파구를 찾게 됐다.
88㎜ 수준의 작은 상완골 뼈가 처음에는 어린이의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연구진이 현미경 등 장비를 이용해 뼛조각을 정밀 조사한 결과 완전히 자란 성인의 뼈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뼈의 주인의 키는 최대 108㎝를 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70만년 전 살았던 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성인의 뼈가 6만년 전 살았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표본의 뼈보다 9~16% 가량 더 얇고 작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즉, 초기 형태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도 이미 최대 신장이 1m 내외일 정도로 작은 형태로 진화한 셈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원형 인류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의 평균 신장은 현생 인류와 비슷한 약 1.7m 수준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100만여년 전 플로레스 섬에서 정착을 시작했고, 70만여년 전 살았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이미 소형화된 점을 고려하면 이 인류는 섬에 도착한 지 30만년 이내에 이미 섬 왜소화를 마친 셈이다. 키와 덩치가 작아지면서 뇌 또한 그에 맞게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 중 한명인 도쿄대학교의 인류학자 카이후 요스케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새로운 체형으로 급속하게 바뀐 것은 인류의 진화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보여준다”며 “우리는 인간이 똑똑해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인류가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