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아일랜드 4개의 지역이 합쳐져 오늘의 영연합왕국(브리튼)이 되기 전, 1603년 잉글랜드 왕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서거했다. 헌데 그녀는 ‘국가와 결혼했다’며 독신을 지킨 탓에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
대안으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국의 왕까지 겸하면서 제임스 1세로 등극했다. 그리고는 성대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이미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정치적 효과를 위해 활용되었던 연극에 비중을 두고 여러 문화 예술인들도 초대했다.
그 중에 세익스피어도 있었다. 많은 희곡을 쓴 그의 작품 중 유명한 4대 비극은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성격적 결함으로 초래된 종말에 대한 것이었는데 특히 맥베스(Macbeth)는 권력 야망으로 인한 비극이면서 정치적 난제를 정면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왜 그런 이야기를 썼을까? 제임스1세는 자신의 왕위계승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종교적 반감을 무위시키기 위해 자신은 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믿음과 왕권신수설을 더욱 강화하면서 이러한 소재의 발굴을 의도했다는 일설이 있다.
충신 맥베스는 동료장군과 함께 스코틀랜드 왕을 위해 전투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세 마녀로부터 맥베스가 왕이 되고 동료장군의 자손들도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이에 놀란 맥베스는 망설이는 마음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권력욕이 많은 아내는 예언에 홀린 그를 부추켜 왕 덩컨을 살해하고 동료장군까지 제거하게 해 왕위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이 후 맥베스는 동료장군의 망령에 시달리게 되고 아내는 양심의 가책으로 몽유병 환자가 되었다가 끝내 자살하면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궂이 맥베스가 아니더라도 동서고금, 정치의 비정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수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미 드라마 시리즈도 그 중 하나다.
권력욕으로 맺어진 부부가 최고 권력을 손에 넣기까지 벌이는 협잡과 권모술수 이야기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시작한 정치가 점차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하는 잘못된 정치의 폐해를 그린 거다. ‘하우스 오브 카드’- 말 그대로 언제 무너질지 모를 사상누각(沙上樓閣). 이는 국민이 빠진 정치는 토대 없는 집과 같다는 메시지다.
지난 16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맥베스로,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로 빗댄 기사를 썼다. 그러고 보니 ‘맥베스’의 스토리와 한국 정치가 절묘하게 겹쳐지는데 어쩐지 400년 후 한국에서 재현한 듯한 그런 막장 드라마에 적잖은 영국인들이 한국 정치를 흥밋거리처럼 바라본다는 느낌에 마음이 편치않다.
더구나 여담이지만 연극계에서는 ‘맥베스 저주’란 말이 있다고 한다. 지난 400여년간 맥베스와 관련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실제로 중세시대에 사용되던 마녀 주문으로 연극에 저주가 걸려 그렇다며 ‘맥베스’를 직접 지칭하지 않고 ‘Scottish Play’라 부른다고 하는데 구태여 한국 사태를 놓고 재삼 ‘맥베스’ 운운한 것에 불쾌하기까지 하다면 이 또한 주술을 인정하는 격이 되는걸까?
아무튼 죽음을 앞둔 맥베스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간다/ 우리의 어제들을 어리석은 자들에게 보여주라/ 우리 모두 죽어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 위에 잠시 거들먹거리며 우쭐대고 걷지만/ 얼마안가 곧바로 잊히고마는 가련한 배우일뿐/ 그것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와도 같아/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도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이 ‘정부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국민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거늘 이 모두가 ‘권력은 가장 강력한 최음제다’라는 기막힌 경구 때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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