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역대 최장수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52·포르투갈)가 외국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2차·최종)을 완주하고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시리아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별리그 A조 8차전에서 김진수(전북), 권창훈(김천)의 릴레이골을 앞세워 2-0으로 승리했다.
4연승으로 6승2무(승점 20)가 된 한국은 3위 UAE와 승점 차를 크게 벌려 잔여 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최소 조 2위를 확보, 각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1954년 대회를 포함하면 통산 11번째다.
부임 후 빌드업 축구를 고집해 논란이 됐던 벤투 감독은 코로나19 사태와 지난해 한일전 참패(0-3) 등 위기에도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밀어붙이며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2018년 8월22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종전까지 최장수 사령탑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995일)을 넘어 역대 최장수 감독에 등극했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이끈 벤투 감독이 오는 11월 개막하는 카타르월드컵까지 팀을 지휘하면 역대 최장수 부임 기간은 1500여 일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국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을 모두 완주했다. 과거 조 본프레레 감독이 2006년 독일월드컵 최종예선을 모두 지휘한 적이 있지만, 2차예선은 중간에 이어 받았다.
벤투 감독은 2018년 9월7일 코스타리카와 평가전(2-0 승)을 시작으로 그해 12월31일 사우디아라비아전(0-0 무)까지 7경기 연속 무패(3승4무) 행진을 이끌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시리아 원정까지 총 41차례 A매치를 지휘해 27승10무4패(74골 25실점)를 기록 중이다.
A매치 승률이 약 66%로 슈틸리케(69%·39전 27승5무7패) 다음으로 높다. 60%가 넘는 것도 슈틸리케와 벤투뿐이다.
하지만 부임 두 번째 해인 2019년부터 벤투 감독을 향한 시선은 곱지 못했다.
높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공격 기회를 창출해 득점 기회를 노리고, 후방 빌드업을 통해 상대 진영까지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는 벤투식 축구는 이후 2년 가까이 완성도를 높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큰 기대를 모았던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도 개최국 카타르와 8강전에서 0-1로 패해 59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이 무산됐다.
벤투가 고집했던 빌드업이 느리게 이뤄지면서 공격 작업이 비효율적으로 전개됐고, 결국 카타르 골문을 열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도 벤투호는 초반에 고전했다.
지난해 6월 안방에서 잔여 경기를 치르면서 H조 1위로 최종예선에 올랐으나, 벤투 축구에 대한 물음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손흥민 없이 나섰던 그해 3월 한일전 0-3 완패는 벤투 경질론에 불을 지폈다.
축구계 안팎에선 코로나19 덕분에 벤투 감독이 최장수 사령탑이 됐다는 말마저 나왔다.
반전은 최종예선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치른 1, 2차전 때만 해도 불안한 경기력이 이어졌으나, ‘원정팀의 지옥’으로 불리는 이란과의 4차전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긴 뒤 UAE 5차전 홈 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1-0 승리하고, 시리아와 6차전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탔다.
불과 2달 사이 경질론은 사라졌고, 벤투 축구가 마침내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더불어 국내파 중심으로 꾸려졌던 1월 터키 전지훈련에서 유럽 팀인 아이슬란드(5-1 승), 몰도바(4-0 승)를 대파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의 부상 이탈에도 중동 원정에서 2승을 추가했다.
월드컵 예선 때마다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던 한국 축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오랜만에 월드컵 출전권을 수월하게 확보했다.
이번 중동 원정을 앞두고도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과 황희찬이 부상으로 제외되는 등 전력 누수가 우려됐지만, 1월 터키 전지훈련에서 국내파 경기력을 점검해 우려를 씻었다.
결과적으로 2018년 부임 후 3년 넘게 ‘빌드업 축구’만 구사한 뚝심이 벤투만의 색깔을 완성한 셈이다.
상대가 누구든 전술 변화 폭이 크지 않아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손흥민이 빠져도 대표팀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숙제가 없는 건 아니다. ‘빌드업 축구’로 아시아 예선을 순조롭게 돌파했지만, 벤투 축구가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해야 하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당시 세계 1위였던 독일을 꺾었지만, 상대에 주도권을 내주고 역습으로 일군 성과였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를 지배하면서 경기를 운영한 적은 거의 없다.
이것은 카타르월드컵까지 벤투호가 풀어야 할 과제다. 강팀과 평가전을 통해 빌드업 축구가 본선에서도 통할지 점검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