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헌정 중단 행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서막이 아니다.
그간 국민의힘이 애써 덮어두었던 ‘보수의 내전’을 본격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면 직후 결정된 조기대선은 국민의힘에게 단순한 정치적 위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보수 정치의 본진이 무너졌다는 것, 그리고 이를 재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어떤 보수인가”라는 질문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질문이 그리 새롭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윤석열 정부의 파산 속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한 이름은 다름 아닌 한동훈 전 대표이다. 그는 ‘계엄령 시도’에 대한 선 긋기와 함께 “법치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강조하며 국민의힘 주류 내 합리적 보수의 재구성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른바 윤핵관 체제 이후 국힘이 오랜만에 내세울 수 있는 ‘비윤’이자 ‘비극우’ 카드로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이 귀환은 곧장 꽃길이 아니다. 국힘의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선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강성 유튜버와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 여전히 당심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동훈은 과연 이들과 손잡지 않고 본선에 오를 수 있을까?
한동훈은 분명히 ‘계엄령’에 선을 그으며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호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곧바로 국힘 내 강경파들에게 ‘배신’으로 읽힌다.
이들은 윤석열 파면을 “사법 쿠데타”라 규정하며, 음모론과 반공주의적 서사를 다시 들이민다.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당내에선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국힘 지도부는 두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첫째, 한동훈을 앞세워 본선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냐. 둘째, 내부 강경세력을 자극하지 않고 어떻게 당내 질서를 유지할 것이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노선투쟁은 불가피하다. ‘법치와 헌정 수호’라는 최소한의 원칙을 말하는 쪽과, ‘음모론과 복수의 정치’로 응수하는 강성 우파의 노선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충돌은 단지 국민의힘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보수 전체가 어디로 나아갈 지를 가늠하게 할 결정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 노선투쟁은 그 어떤 경제 정책이나 복지 이슈도, 이 싸움의 쟁점이 되지 못한다. 오직 정체성의 전쟁, 역사 해석의 전쟁, 그리고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전쟁만이 남아 있다. 왜냐면, 국힘 내부에서 ‘합리적 보수’의 목소리는 너무 오래 침묵해 왔기 때문이다.
대선은 보수의 재구성 싸움이 될 것인가
조기 대선의 의미는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되기보다는, 오히려 보수 정치 내부의 진통을 더욱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동훈이 경선을 돌파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 정치인의 승리가 아니라 강성 우파 헤게모니의 구조적 균열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국힘은 다시 한번 ‘광장의 보수’를 상실한 채 자기 내부의 음모론과 괴담 속에서 소멸해갈지도 모른다.
정치는 언제나 진공을 싫어한다. 윤석열의 공백은 곧 새로운 질서를 요구한다.
과연 한동훈이 이 질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국민의힘이라는 낡은 그릇으로는 과연 새 술을 담을 수나 있을까.
<김상목 Knew LA 대표 기자>
이전 칼럼 [김상목 칼럼] 이재명 무죄보다 더 불편했던 이 장면
이전 칼럼 [김상목 칼럼] 투명인간 구출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