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과도한 관세가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며 철회할 것을 설득했으나 무시되자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 보도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해 손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미국 기업 거물들이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전화, 소셜 미디어, 주주 서한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지난 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 등 주요 은행 최고 경영자들이 워싱턴 로비 단체가 조직한 비공개 회의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주말 동안 트럼프 대선 캠페인 주요 후원자들이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에게 전화해 호소했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다.
7일 헤지펀드 억만장자들 중 일부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 트럼프 선거를 크게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유대인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해온 윌리엄 애크먼 헤지펀드 매니저가 X에 “잘못된 계산 때문에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 참모진들이 9일 이전에 실수를 인정하고 대통령이 큰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썼다.
트럼프를 비판했던 억만장자 석유 트레이더 앤드루 홀은 트럼프 지지자인 애크먼이 비판 발언을 한 것을 두고 “ 자신이 과거에 한 말을 번복하는 용기가 있다”고 칭찬한 뒤 “다른 금융 거물들은 어디갔나, 왜 아무도 입을 열지 않나”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트럼프 당선 초기 며칠 동안 관세에 대해 일부 긍정적 평가를 했던 다이먼 JP모건 회장도 이날 투자자에 보낸 서한에서 관세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투자 대기업 블랙록의 로렌스 D. 핑크 회장은 7일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 경제가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며 가격이 오를 품목들로 바비인형 등을 꼽은 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들이 지금이 경기 침체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가 금융인들 목소리 묵살되는 것은 처음
역대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월가 금융인들이기에 트럼프 정부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무시되는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는 1기 정부 때 주가가 오른 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하곤 했었으나 이번에는 주가가 폭락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로버트 울프 UBS 아메리카스 전 회장은 “대통령 후원자들과 마러라고 친구들이 이 잘못된 접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7일 오전 트럼프가 관세를 유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폭락하던 증시가 상승 반전하자 월가가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백악관이 즉시 보도를 부인하면서 주가가 다시 하락했다.
증시 안정은 기업 간 거래를 촉진하고 기업 및 소비자에게 대출하는 은행들의 채무불이행 우려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월가는 주식 매도 사태가 투자 포트폴리오 전반에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 주요 투자은행은 11일 분기실적 보고를 앞두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우량 기업 대출 자산에 대해 재평가할 지를 검토하고 있다.
위험 기업 대출 중심 사모 대출업체 위기 조짐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성장한 사모 대출 시장에 위기 조짐이 커졌다.
위험 기업에 대출을 주로 담당하는 사모 대출업체들은 이번처럼 기업의 시장가치가 빠르게 감소하는 일을 경험한 적이 없다.
중국 등 보복 관세를 경고하는 국가들에게 많은 매출을 올리는 미국 기업들이 많은 것도 위기 조짐이다.
한편 월가 억만장자들 일부가 자신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판 수위를 낮추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주 러트닉 장관과 만났던 기업인들이 3일 뒤 다시 전화 회의를 하면서 논의의 초점이 트럼프의 생각을 바꾸는 대신 은행을 방어하는 방안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진다.
7일 강력한 비판 목소리를 냈던 애크먼도 다음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다만 “협상 시간을 주지 않고 추진하면 불필요한 피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써 비판의 초점을 정책 자체에서 운용방식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