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복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땅’으로 불리는 용산정비창 부지가 민간 개발사업이 무산된 지 10여 년 만에 국제 업무지구로 개발된다. 서울시가 용산구에 100층 높이의 빌딩과 대규모 녹지, 업무와 주거·여가 시설이 들어서는 세계 최대의 ‘수직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의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07년 용산정비창 부지와 인근 서부이촌동을 묶어 아파트와 금융·IT 기술 등의 밀집한 업무지구를 조성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로 2013년 드림허브가 부도났고, 결국 그해 10월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역지정을 해제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업이 취소됐다. 이후에는 코레일과 드림허브와 이 땅의 소유권을 놓고 소송전을 벌였다. 2019년 코레일이 승소한 뒤 토지 소유권 100% 확보했다.
서울시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민간이 주도하던 방식에서 공공이 100%(코레일 70%·SH공사 30%) 지분을 가지고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또 과거 사업 추진단계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서부이촌동을 아예 제외했다. 민간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금융위기라는 변수에 시행사의 자금난, 서부이촌동 보상 문제 조율 난항 등 실패 사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 주도로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서울시는 지난 4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부지 약 50만㎡를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 도시로 만든다는 내용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착공을 시작해 2030년대 초반 입주가 목표다.
국제업무지구는 용도에 따라 ▲국제업무존 ▲업무복합존 ▲업무지원존 등 3개 구역으로 나뉜다. 국제업무존에는 최대 용적률 1700%가 적용된 100층 높이의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업무복합존에는 업무와 기업지원시설이 입주하고 업무지원존에는 주거, 교육 문화 등 지원시설이 들어선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건물들의 45층을 잇는 1㎞ 길이의 보행 전망교를 설치해 관광객 유치 효과가 클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또 부지와 건물 외벽 등을 입체적으로 활용해 사업 공간 전체와 맞먹는 규모인 50만㎡ 수준의 녹지도 조성될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상공원뿐만 아니라 공중녹지와 순환형 녹지, 선형녹지 등을 마련해 용산공원부터 한강공원을 지나 노들섬까지 이어지는 도시 녹지보행 축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가 구도심 대규모 융복합 및 고밀 개발의 국제 기준이 되도록 모든 행정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계획을 필두로 대형 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초고층 빌딩을 지을 시공 능력을 갖췄고, 호텔과 상업 시설, 주거 등이 결합하면 그만큼 사업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며 “조금 더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나와야 사업성 여부를 검토할 수 있겠지만, 이번 개발사업을 필두로 다른 대형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용산정비창 부지가 워낙 넓고, 인근에 유입 인구가 많아 개발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큰 지역 중 하나”라며 “막대한 공사비를 제쳐 두더라도 서울에 랜드마크 건물을 짓는다는 점에서 노려볼 만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사업시행자인 SH와 코레일이 도시개발 경험이 부족하고,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민간 분양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고밀 복합개발로 도심 교통난을 일으키는 등 기반시설 부족에 따른 도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반시설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수준에서 고밀 복합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할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 고밀 복합개발이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개발에 앞서 주변 교통환경영향 평가나 도시기반시설 등에 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막대한 재정 투입되는 사업이나, 사업시행자인 SH와 코레일이 고밀 복합개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며 “기획 단계부터 고밀 복합개발 역량을 갖춘 민간 기업들과 협업하고, 개발이익도 공공과 민간이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