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학가 찬반 세력 간 대립이 ‘혐오 표현’까지 동반하며 격화하는 모양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학생들을 비하하거나 ‘조리돌림’ 하는 등 양측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31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일부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학생들의 신상을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개하거나 혐오표현을 사용하며 비하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서강대 학내 게시판에 부착된 대자보에서 한 학생은 “지난 16일 밤, 12월 탄핵 찬성안에 서명한 학생 700여명의 명부가 유출돼 서담, 에브리타임 등에서 소위 말하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찬성안에 서명한 학생들을 향해 ‘이재명 지지자’, ‘사회주의자’ 등 정치 성향을 낙인찍는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홍익대 한 재학생도 학내 게시판 대자보에서 “일베발 유행어를 서슴지 않게 사용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상대의 신상을 캐고, 유언비어와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공간이 정상이냐”고 목소리를 냈다.
해당 대자보에는 최근 3개월 동안 학내 커뮤니티에 올라온 중국인 및 여성에 대한 혐오성 글이 함께 실렸다.
탄핵 반대 측 학생들을 향한 악의적 비방과 혐오 표현도 여럿 등장하고 있다. 한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탄핵 반대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특정 지역을 비난하는 글이 게시됐다.
또 다른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탄핵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얼굴 사진 등의 신상 정보를 올리며 이들을 박제하자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에는 “자퇴해라” “누군지 다 소문내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대학 커뮤니티가 혐오 표현으로 얼룩지자 일부 재학생들은 “같은 학생끼리 양극단으로 나눠 싸움을 붙이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글이 많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말라”는 등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사안을 두고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데에는 커뮤니티의 ‘익명성’이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익명성을 악용한 외부인의 개입으로 갈등이 확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내 커뮤니티는 원칙적으로는 가입 대상을 재학생 혹은 졸업생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아이디 구매나 도용은 따로 제재할 수 없어서다.
전문가들 역시 대학 내 갈등양상 확산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성’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고 진단하며, 건전한 공론장 형성을 위해서는 혐오 발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정치 양극화 대결 구도가 캠퍼스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짚으며 “특히 온라인에서는 자기를 가린 채 여러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보니 혐오 표현 등이 증폭돼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자신과 이념이나 입장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여러 사이버 위해 행동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의사 표현은 자유지만 혐오 발언은 선을 넘는 것이니 자제해야 한다”며 “혐오 발언을 적은 사람에 대해서 명예훼손으로 신고해 처벌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