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옛 초(楚)나라 장수 항우와 한(漢)나라 유방 사이에 천하를 쟁취하기 위한 5년간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협상하기로 했다. 홍구(鴻溝) 지역을 기준으로 유방이 서쪽을, 항우가 동쪽을 갖기로 한 휴전이 이루어지자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어 유방도 돌아갈 준비를 할 때 책사 장량이 만류한다. ‘지금이 항우를 멸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때를 놓치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 라며 마지막 결전을 촉구한다. 이에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천하를 걸고 단판 승부를 벌이기로 한다.
유방의 대연합군 60만이 해하로 집결해 항우의 10만 초나라 군대를 에워싸고 초한대전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항우는 여기서 처음으로 패한다.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 민요가 들려온다. 전쟁에서 지고 몸은 피곤한데 들려오는 고향의 노래에 가족이 그리운 병사들은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방 측이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놀라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사가 나온 배경이다). 그리고는 항우는 비통해하며 그 유명한 ‘해하가((垓下歌)’를 부른다. ‘역발산혜기개세’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네)라는 첫구절로 유명한 노래다.
그러자 항우의 애첩 우희가 답가를 부르고는 항우의 칼을 뽑아 자결한다. 이 장면이 항우와 우희의 이별을 다룬 경극 ‘패왕별희 (覇王別嬉)’다. (정사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결국 항우는 대패하여 오강 (烏江)에 이르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방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200년 후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이 싸움을 두고 시 한 편을 썼는데 마지막 구절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이란 말이 나온다. ‘용과 범이 지쳐 산하를 서로 나누니/억만 백성들이 목숨을 부지했네/누가 말머리를 돌리자고 권했나/하늘과 땅을 건 한판 승부를 겨루자고 (眞成一擲賭乾坤)’
건곤(乾坤)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이르는 것으로 건(乾)은 하늘, 곤(坤)은 땅, 일척은 한 번에 던진다는 뜻이니 이는 곧 ‘천하를 걸고 한판 승부를 겨룬다’는 말이다.
주역은 흔히 예언서 혹은 점을 보는 점서(占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는 짧은 시각이고 중국 고대 전설의 왕이었던 복희씨가 팔괘를 만든 후 주(周)나라 문왕과 춘추시대 공자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동양의 세계관과 지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그 뜻이 심오하다.
이는 공자도 주역을 너무 열심히 읽어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을 정도라 하고, 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마저 ‘양자역학이 지금껏 해놓은 것은 태극과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주역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의 다른 이름으로 3000년 전에 쓰여진 책이다. 역경의 역(易)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는 뜻으로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헌데 이를 주(周)나라의 역(易)이라해서 주역(周易)이라고도 하게 된 거다.
이에 따르면 천지만물은 모두 양(陽)과 음(陰)으로 되어 있어서 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고, 해는 양, 달은 음 하는 식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과 음 두 가지로 구분해 그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헌데 양과 음은 태극에서 나온 후 다시 변해 8괘가 됐다. 바로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의 괘다. 태극기는 이 중 네가지 괘만을 뽑아 네 모서리에 두었는데 이들이 건(乾), 곤(坤), 이(離), 감(坎)이다. 각 괘는 각자의 의미가 있지만 대상 사물에 따라 그 뜻이 바뀌기도 해 여러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은 하늘(天)이지만 夏, 南, 父 등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곤(坤)은 땅(地), 冬, 北, 母 등이고, 리(離)는 불(火=해), 春, 東, 女 등이요, 감(坎)은 물(水=달), 秋, 西, 子 등이다.
하지만 이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자 다시 각 8괘를 두개씩 위아래로 짝을 지어 64괘를 만들었다. 그리고 64괘 첫번째부터 중천건, 중지곤, 수뢰둔, 산수몽 등 순서대로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13번째가 천화동인(天火同人)이요, 14번째가 화천대유(火天大有)다.
근자에 단군 이래 최대의 부동산 사건이라는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로비, 특혜 의혹 사건이 사회적으로 소란한 가운데 바로 이 화천대유(火天大有)와 천화동인(天火同人)이 연일 매스컴에 등장한다. 모회사가 화천대유(火天大有)이고 그 자회사가 천화동인(天火同人)이란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좋은 괘 이름으로 조선의 정조대왕이 제일 좋아했다고도 한다. 14번째 괘인 화천대유는 화천(火天), 즉 불(火)을 상징하는 이(離:)괘가 위에 있고 그 아래 하늘(天)을 의미하는 건(乾:
)괘와 한짝이다. 다시 말해 불에 해당하는 태양이 하늘 위에서 온 천지를 비추니 크게 얻는다는 뜻으로 대유처럼 번성하고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좋은 괘 중 하나다.
바로 그 앞13번째 괘인 천화동인(天火同人)은 반대로 천화(天火), 즉 하늘아래 불이 있으니 이는 신(神)이 내려온 거라 해석되어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운으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뜻이라고 한다.
이렇듯 두 괘가 모두 좋은 괘이지만 주역은 좋은 운(運) 속에 내재하는 불행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노자(老子)에서 ‘화(禍)는 복(福) 옆에 기대 있고 복(福)은 화(禍) 속에 엎드려 있다’고 일깨운 바와 같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다.
허니 진정한 화천의 대유(大有) 운으로 ‘성공한 바를 칭송받기 위해서’는 천화의 동인(同人)을 이르는 ‘남과 함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과 사회를 위해서는 베풀지 않고 부정한 권력과 결탁해 재물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
이는 즉, 달도 차면 기울고, 권세도 지나치면 후회하게 되듯 화천대유의 의기양양한 뽐냄도 결국 쇠(衰)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허니 겸손하고 신중해야한다고 일러두기 위해 주역은 화천대유 바로 다음 15번째 괘인 ‘지산겸 (地山謙)’을 두었다. 지산 (地山), 즉 땅 아래에 산이 있음이니 이는 ‘땅은 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겸손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힘있는자 허세(虛勢) 부리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말이다.
항우는 초나라 귀족 출신의 장수로 ‘역발산기개세’의 힘과 천부적인 군사 지휘관으로 그의 능력은 고대사에서 적수가 없을 만큼 뛰어났었다. 이러한 항우가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한 유방에게 한 거다. 그것은 결국 항우의 자만과 독선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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