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신(神)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이에 따라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신(神)을 표기할 때 모음 없이 네개의 자음만을 사용해 ‘YHWH(YHVH)’로 적고 이를 읽게 됐을 때는 건너뛰거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 (Adonai)’로 대체해 읽었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원래의 발음을 알 수 없게 되자 네 자음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조합해 ‘야훼(야웨)’ 혹은 ‘여호와’라 유추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절대 창조주와 유한한 인간을 구별짓기 위한 것이었을게다. 신(神)은 초월적 존재이고 그 이름은 거룩했기 때문이다.
헌데 인간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별이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피휘(避諱)다. 주로 황제나 왕의 이름을 휘(諱)라하는데 그 이름과 동일한 글자나 글자는 달라도 발음이 같은 것은 백성이 사용할 수없어 피해야하는 법도다.
이러한 ‘피휘’의 전통은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때부터라고 한다. 진시황(秦始皇) 혹 시황제(始皇帝)는 진나라에서 비로소 ‘황제’가 시작됐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다. 진시황의 본명 ‘영 정’은 ‘정사 정(政)자’를 쓴다. 이 때문에 1월 ‘정월(政月)’은 정사 정(政)에서 ‘正月’로 바뀌었다. 나라이름도 그렇다. 원래 나라를 말할 때 ‘나라 방(邦)자’를 썼다. 하지만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방(邦)자 때문에 나라 이름에 국(國)자를 쓰게 된거다.
당나라 때는 더욱 심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 때문에 ‘관세음보살’은 ‘세(世)’를 빼고 아예 ‘관음보살’로 줄여졌다. 심지어는 글자는 다르지만 성씨 이(李)와 발음이 같은 잉어 이(鯉)를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 적선공(赤鮮公 : 붉은 물고기님)이라는 존칭으로 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피휘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정적을 제거하는 사례도 빈번히 있었다. 소위 ‘필화사건’ 혹은 ‘문자의 옥(文字-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일어난 피바람으로 문서에 적힌 문자나 내용을 빌미삼아 황제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왜곡해서 일족이나 일당을 멸하는 숙청의 한 방식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런 정도니 자칫 황제의 이름을 잘못 썼다가는 멸문의 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역사상 수백명의 황제 이름을 피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여기에 성현들의 이름까지 피해야 했으니 백성들의 그 고초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게다.
(여담이지만 이와 거꾸로 된 일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는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대상으로 신(神)으로까지 추대된 이후 후대 황제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관우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피휘를 하였다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우리나라 왕 뿐만 아니라 중국의 피휘까지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이에 따라 고구려 연개소문은 천개소문으로 기록돼 있다. 당나라 고조 이름 이연(李淵)을 피하기 위해 ‘연(淵) 씨’가 ‘천(泉) 씨’로 둔갑한 것이다. 경상도 대구의 한자는 원래 ‘大丘’ 였으나 공자의 이름 구(丘)와 같다하여 발음은 같지만 부수가 하나 더 붙은 글자로 바뀌어 ‘大邱’ 가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경복궁의 3개 문 가운데 하나가 ‘예(禮)를 널리 편다’는 의미에서 홍례문(弘禮門)이었지만 ‘흥례문(興禮門)으로 바뀌었다.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 ‘홍력(弘歷)’의 홍(弘)자를 피해야 해서다. 이외에도 글자 때문에 과거를 포기한다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에게 ‘피휘’는 불편할 뿐만아니라 두려움 그자체였다. 해서 왕들은 백성들을 위해 잘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글자를 골라 쓰거나 아니면 글자 한 자라도 줄이다보니 역대 왕들의 이름이 외자로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런 관습이 생겨난 것은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예(禮)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한자문화권의 인식 때문이었다. 해서 이름대신 자(字)나 호(號)와 같은 별명으로 부른다든지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언급할 때 ‘홍길동’이라 하지 않고 ‘홍, 길 자(字), 동 자(字)’라고 조심해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코로나 19의 또 다른 변이 오미크론(o: Omicron)이 우리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 WHO는 코로나 변이가 나올 때마다 그리스 문자로 명명해왔다. 헌데 알파(α)에서 시작해 12번째 글자 뮤(μ)까지 오다가 갑자기 15번째 오미크론(o)으로 건너뛰면서 여러 예측이 나오고 있다.
13번째가 뉴(ν)인데 이는 영어의 New와 발음이 비슷해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로 오인할 수 있어 피했다고 한다. 문제는 14번째 글자인 크시(ξ)다. 이는 영문으로 시(Xi)에 해당해 시진핑 주석의 성씨 시(Xi)와 같게 들려 자칫 시진핑 변이(Xi variant)로 인식될 것을 우려했다는 해명이다. WHO가 코로나 초기부터 중국의 눈치를 살펴 조치를 취해왔다는 비판도 있고 보면 어째 석연치 않아 보인다.
지난 2014년 시사 주간지 ‘타임’은 시진핑 주석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시황제(習皇帝·Emperor Xi)’라는 제목을 달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정이야 다르지만 어찌됐든 이도 피휘인 셈 아닐는지? 마침 같은 해 시진핑 주석 이름을 잘못 읽어 해고당했던 인도 앵커 사연도 있다. 시진핑의 성씨 영문자 XI 가 로마자로 11와 같다보니 앵커가 ‘Eleven Jinping’으로 읽었다는 얘기. 피휘아닌 피휘 닮은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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