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아이들과 좋은 학부모들 만나길 응원해요’ 선생님과의 대화 속 이 당연한 말이 언제부터 간절히 바라야 하는 말이 됐을까요.”
지난 7월19일 극단선택을 한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4일을 이틀 앞두고 검은 옷을 입은 전·현직 교원 20만명이 사건의 진상 규명과 교권 회복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모였다.
전국 교사들은 2일 오후 2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국회대로 일대에서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전국에서 20만명 이상의 교사들이 참여했으며, 이들의 이동을 위해 버스 (비공식 대절 포함) 800여대와 비행기 등이 동원됐다.
숨진 서이초 교사와 예전 학교에서 기간제 생활을 함께한 동료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편지를 읽었다. 전 동료 A씨는 “(고인이) 이번 여름방학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만나자고 연락해줬다. 이번엔 무조건이라며 다짐을 받아내듯 말했는데, 이젠 그 약속을 지킬수도, 다시 볼 수도 없어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전 동료 B씨는 “선생님은 퇴근 후 운동을 하고 독서를 즐기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미술에 재능 있어 직접 학습지를 만들기도 했다. 노란 바구니를 들고 반으로 향하던 (고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그를 추억했다.
숨진 교사의 대학교 대학원 동기였던 C씨는 “삶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축복으로 여긴다는 것, 삶을 살아있음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그를 기억했다.
이어 “새벽에 사망 소식을 듣고 다음 날 학교로 출근했다. 친구가 떠났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이들과 수업하고 웃어줘야 했다”며 “그 기괴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린 점점 가르칠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이 앞장서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발언을 들으며 일부 교사들은 눈물을 쏟았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하늘을 보고 “진실 없는 사건 수사, 진실 규명 촉구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교사들을 보호하라”, “우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등의 구호를 외칠 때는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절규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교원들은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의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해당 조항은 정서적 학대 행위가 무분별하게 적용돼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은 위축되고, 학생은 책임과 배려, 절제를 배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학생, 학부모, 교육당국의 의무와 책무성을 강화 ▲즉시 분리된 학생의 교육권이 보장되는 현실적 대응 방안 마련 ▲전국적으로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개설 ▲학교폭력 개념 재정의 ▲교육과 보육의 분리 ▲교육에 대한 교사의 권리 보장 ▲모든 교육 관련 법안·정책 추진 전 과정에 교사 참여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여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들의 외침을 들어라.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학생과 교육 활동, 교사들을 보호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세종시 성희롱 교원평가 피해자 D씨도 참석해 발언했다. D씨는 “지난 7월19일은 제가 학교에 사직원을 제출한 날”이라며 “서이초 교사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교실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롭고 무서웠을까 싶어 가슴을 쳤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시위현장을 바라봤다. 서이초 사망 교사 또래의 젊은 교사들과 동행한 중년의 부모들도 눈에 띄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도종환·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이번 집회는 지난 7월 서이초 교사가 숨진 후 일곱번째로 열리는 대규모 집회다. 전국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오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삼고, 연가·병가·재량휴업을 통한 ‘우회 파업’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다만 이날 교사가 휴가를 쓰면 징계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이 나와 충돌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