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도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때 촛불집회를 개최한 지 8년만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군인권센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주요 시민단체·노조는 이날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에서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퇴진광장을 열자! 시민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 시작 전 무대 근처에 모인 시민들은 전날 밤을 되새기며 “어제 그 역사적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인 날이다”라고 소회를 나눴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모였다. 중장년층이 많았으나 대학생, 청년,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들은 ‘내란죄 윤석열 퇴진’ ‘퇴진 광장을 열자’가 쓰인 손피켓과 촛불을 손에 들었다.
뉴시스 취재진이 만난 현역 군인 김모(20)씨는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와서 하루 지난 시점에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충격으로 한숨도 못 자고 부대 복귀를 대기했다”며 “군대는 국민에게 충성하라고 하면서, 이건 국민을 위한 게 아니지 않나. 명령에 따르라면서 계엄을 선언하니 불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는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서 뛰쳐나왔다”며 “계엄은 국가 안보가 달린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집회에 나온 장모(70)씨는 “어제 새벽 두 시 반에 사업하면서 알게 된 영국인들이 전화 와서 너무 부끄러웠다. 이게 나라냐”며 “우리 세대가 어떻게 만들어 놓은 나라인데, 하루 아침에 망가뜨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모(29)씨도 “간밤에 계엄령을 때리면서 제 목에다 총칼 들이미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 걸 보니 힘이 많이 나고 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대학생 김채원씨는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는데 결과는 참혹했다. 제가 저지른 실수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두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는 이미현씨는 “열심히 일해서 귀하게 키운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바란 건 다치지 말고 집에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하며 군인을 앞세워 나라를 망하게 한다”며 “엄마로서 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발언 중간 사회자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하자 “꼬리 자르지 마!”라는 외침이 나오기도 했다. 사회자는 “나라 지키라고 장관 시켰더니 계엄으로 국민 협박하고 슬그머니 도망간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약 한 시간가량 시민대회를 진행한 후 오후 8시께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퇴근시간을 피해 8시부터 행진하기로 경찰과 협의했다”고 전했다.
이날 저녁 전국 곳곳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에서는 오후 7시부터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광주시민 총궐기대회’가 개최됐다. 대구에서도 ‘내란범죄자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가 진행 중이다.
부산과 울산, 강원, 제주 등지에서도 저녁 촛불집회가 예정됐다. 대전·세종·충남에서는 오전부터 탄핵 촉구 집회가 열렸다. 이 같은 동시다발 촛불집회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이후 8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