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는 이 질문에 학문적 탐구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미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98세로 서거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일 보도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행복감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의 주인공이다.
이스털린이 석좌 교수로 일한 USC는 서거를 발표하면서 그를 “행복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렸다. 그는 지난달 16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자택에서 서거했다.
이스털린 역설은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이 행복감 증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통념과 경제 교리를 반박한 이론이다.
1970년대에는 경제학자들과 정책가, 일반인 모두 국내총생산(GDP)의 증가가 국민 행복도 증가로 이어질 것임을 당연시하던 때였다.
당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였던 이스털린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소득 증가가 매우 빨랐으나 미국인들은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스털린은 전후 복구를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된 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음을 확인했다. 1958년 대비 1987년 일본의 소득이 5배로 뛰었으나 일본인들이 더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스털린은 1974년 발표한 “경제 성장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스털린 역설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19개 나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하지만 소득이 느는 만큼 행복감이 늘지는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이스털린은 주변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행복감을 더 느끼지만 친구나 이웃이 함께 소득이 증가한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의 하나라고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스털린 역설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인용됐고 일반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성장지상주의와 물질숭배를 꼬집는 “행복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는 속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이론을 신봉하는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GDP 성장 정책을 추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저스틴 월퍼스와 벳시 스티븐슨 두 학자가 이스털린 역설이 제시된 이후 34년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반박했다. 경제 성장이 행복감 증진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스털린은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크다는데 동의하지만 부가 행복을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월퍼스, 스티븐슨 교수의 논문이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조잡한 초고”라고 비난했다.
2009년 이스털린이 독일 노동연구소로부터 상을 받자 월퍼스 교수가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이라는 팟캐스트에 올린 댓글에서 이스털린과 자신의 견해차가 크지만 이스털린이 행복경제학의 원조임은 분명하다고 인정했다.
이스털린은 이스털린 역설 외에도 경제적 이유로 출산이 늘거나 줄어든다는 주장도 폈다. 일자리가 많으면 결혼이 증가하며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그는 1945~1965년 사이의 베이비붐이 일자리가 크게 증가해 소득이 늘어나면서 결혼도 늘어난 때문이며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출산율 저하는 정반대 이유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2021년 인터뷰에서 “소득보다 건강과 원만한 가정생활이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