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국 국민법’ 근거…18세기 제정 후 3차례 발동
레바논 국적 ‘H-1B’ 비자 소지 의대 교수도 추방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전문직 비자(H-1B)를 가진 미국 명문대 의대 교수를 강제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 브라운대 의대에서 신장이식 전문의로 재직 중이던 라샤 알라위(34) 교수는 유효한 H-1B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지난 13일 미국에 입국하던 중 돌연 구금됐고 이후 추방됐다.
레바논 국적인 알라위 교수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레바논을 방문했고, 미국 국무부로부터 H-1B 비자를 발급받은 뒤 미국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법원은 당국에 알라위 교수를 추방하려면 사전에 48시간 전에 법원에 통지해야 한다고 명령했으나, 당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는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파리행 항공편을 통해 미국에서 추방됐다.
알라위 교수는 베이루트 아메리칸대를 졸업한 뒤 오하이오주립대와 워싱턴대에서 의학 펠로우십을 받고, 예일대에서 레지던트로 활동한 바 있다. 그의 구체적인 추방 사유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E. 보아스버그 판사는 미 정부 당국이 “법원의 명령을 고의로 어겼다고 믿을만한 심각한 혐의가 있다”며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이번 알라위 교수의 강제 추방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1798년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근거로 이민자 추방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법은 전쟁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외국인의 추방과 구금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주민 강제수용 이후로 사용된 적 없는 법이다.
법원의 추방 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베네수엘라 갱단 소속 이민자 수백 명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로 보내는 추방 항공편을 이미 이륙시키는 등 강경한 이민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브라운대는 이번 사건 이후 교수와 학생들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해외로의 개인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미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학술적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