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다. ‘이란격석(以卵擊石)’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며 승산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란 말이다.
어느 날 묵자(墨子)가 길을 가다가 만난 점쟁이와 시비하던 중 ‘내 말이 충분히 맞는데 내 주장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말로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과 같다. 천하의 계란을 모두 던져도 바위는 그 모양 그대로 있지 깨지지 않는다’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 한 방송에서 실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한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계란에 액체질소를 넣어 완전히 얼린 뒤 대포처럼 발사했더니 바위가 부분적으로 깨졌는데 또 다른 실험에서는 석회암이 깨뜨려졌다고 한다. 일부 바위 재질에 따라 계란으로도 부분적으로나마 깰 수 있었단 얘기지만 이는 조건을 달리한 실험일뿐 계란은 묵자의 지적같이 약자나 연약함을 상징한다.
그런 계란이 역습을 하고 있다. 계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지난 2022년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이후 1억6000만 마리 이상의 산란 닭을 살처분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흔히 한국 군대 장병들 간에서 서열을 두고 ‘짬밥 수’라고 한다면 미군은 ‘계란 수’를 얘기한다. 미군 아침 식사에 스크램블이나 프라이 등 계란 요리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기야 미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빵을 주식으로 하는 미국인들에게 계란은 필수식품이니 비상일 수 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침 일찍 계란을 사기 위해 ‘오픈 런’을 해야 할 정도고 심지어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달걀을 밀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농무부 장관이 ‘집에서 닭을 키우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부과로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면서 ‘계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는 속담을 내세우고 있다. 댓가나 희생없이는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는 말 일게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사안과는 달리 ‘달걀 값은 손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폴란드와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 수출 의향을 물었고 낙농 강국인 덴마크에 계란 수출을 요청하고 나섰다.
얼마 전까지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팔지 않으면 엄청난 관세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는데 이젠 계란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도 알을 깨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Abrasax)다.’
이를 동양적 사고로 본다면 ‘줄탁동시(啐啄同時)’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할 수 있다. 어미 닭이 자신의 가슴 털을 뽑고 알을 굴려가며 골고루 온기가 전해지도록 품고 있다가 알 안에서 새끼가 연약한 부리로 쪼아대면 때맞추어 밖에서도 어미가 깨어주는 모습이다. 그런 어미의 희생과 새끼의 필사적 안감힘 끝에 알을 깨고 얻어지는 결과다.
헌데 어쩐지 ‘계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는 이 속담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 듯 하다. 깨뜨린 계란으로 만드는 scramble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의미처럼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모양새여서 그럴까?
아무튼 이 작은 달걀 하나가 세계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줄탁동시’ 임을 알려 주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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