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정치권에서 분출하는 개헌론에 대해 “개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개헌은 대선이 끝난 후 공약대로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날 거론한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에 선을 그으며 ‘대선 후 개헌’을 공식화한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이 대표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을 핵심 의제로 띄울지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국가 권력의 최고 정점인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헌정질서가 통째로 파괴됐다”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파괴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내란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투표법이 개정돼서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다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으로 60일 안에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고 했다.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기형적인 제도라며 4년 중임제에 동의한다는 입장은 재확인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에 개헌과 관련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라는 기형적 제도 때문에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부터 레임덕이 시작된다”며 “재평가받을 기회도 없기 때문에 국정 안정성이 없다. 그래서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데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느냐. 동의한다.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정치 세력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내란의 문제를 이 개헌 문제로 덮으려고 하는 그런 시도를 하면 안 된다”며 “개헌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생각을 국민의힘이 하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감사원의 국회 이관, 국무총리 추천제 도입, 결선투표제, 자치분권 강화 등은 매우 논쟁의 여지가 커서 실제로 결과는 못 내면서 논쟁만 격화되는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각 대선후보가 국민께 약속하고 대선이 끝난 후 최대한 신속하게 개헌을 그 공약대로 하면 될 듯하다”고 강조했다.
대신 5·18 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는 국민투표법이 개정되면 곧바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5·18 정신,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게재하는 문제와 계엄 요건을 강화해 함부로 남용해 친위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는 건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비명(비이재명)계 잠룡들은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 대표를 향한 견제를 본격화했다.
당 차원의 개헌특위를 구성한 국민의힘은 이날 자체 개헌안을 마련해 대통령 선거일에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헌법 개정은 단지 권력구조를 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전 의원은 이날 “개헌 대통령이 되겠다”며 민주당 내에서 첫 출사표를 던졌다.
김 전 의원은 “제7 공화국을 위해 임기를 2년 단축해야 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며 “대한민국의 대전환, 국가 대개혁을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개헌·조기 대선 동시 투표) 내용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본다”며 “이 대표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마를 준비 중인 김부겸 전 총리는 이 대표를 겨냥해 “개헌과 내란 종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란 수습을 핑계로 개헌을 방관하는 태도는 안일하다”고 비판했다.
김 전 총리를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요청은 분명하다. 탄핵 이후 무엇을 할 거냐고 묻고 계신다”며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파면하는 데 그쳐서는 국민의 절실한 물음에 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를 향해 “개헌 로드맵만큼은 분명히 제시할 책무가 있다”며 다가오는 대선이 아닌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터무니없이 집중된 대통령 권한을 나누는 권력구조 개편, 지방분권, 기본권 강화 등은 공약으로 가다듬고 새 정부 출범 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회부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지금은 내란 종식이 최우선 과제라는 지적에 적극 동의한다”면서도 “우선 계엄 방지 개헌,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행정수도 이전부터 합의하자”고 촉구했다.
김 전 지사는 이어 “권력구조 개편 등 정당별 의견이 다르거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개헌 사항들은 정권교체 이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내년 지방선거 때 2단계로 추진하자”고 밝혔다.
이 대표 측은 개헌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며 대선 후보가 되면 개헌안에 대한 구상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치권에선 부동의 1위 주자인 이 대표가 개헌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진의를 떠나 역대 대선을 보면 개헌 이슈는 통상 1위 주자를 수세에 몰기 위해 띄운다”며 “이 대표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면 개헌 의제를 최대한 늦추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