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활한 시베리아 설평원을 가로질러 누군가를 실은 검은 차 한 대가 강제노동수용소에 도착하고, 곧이어 그를 찾는 방송이 나간다.
‘키릴 라코타, 죄수번호 000. 소장실로 오라.’
호출된 키릴은 거기서 모스크바로 이송되고, 자신을 그 처지로 내몰았던 공산당 서기장과 만난다. 서기장은 모종의 조건하에 그를 자유인으로 풀어주겠다고 한다.
한때 우크라이나의 대주교였던 키릴이 소련의 미움을 사 정치범으로 죄수 생활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이렇게 해서 로마 바티칸으로 보내진 그는, 교황으로부터 동료들 총살 현장에서도 죽음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용기와 신앙을 높이 평가 받아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교황청에 머물게 된다.
얼마 후 교황이 갑자기 서거하고 콘클라베가 열려 7차례 투표하지만, 새 교황 선출에 실패한다. 헌데 예상치 않게 유배형까지 지낸 공산권 출신의 자신이 후보에 오르게 되자, 외부와 단절된 채 2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자신이 위기에 처한 지금의 세계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에 당혹한다.
거듭 거절함에도 결국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된 그는, 양심과 신앙의 소신을 가지고 일할 것을 하느님 앞에 기도하고, 대관식에서 전 세계를 향해 외친다.
‘바티칸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돕겠다.’
그는 틈틈이 남모르게 일반 신부복 차림으로 교황청을 빠져나와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는가 하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하려는 중공 지도자와 만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려는 힘겨운 줄다리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1963년에 출간된 모리스 웨스트의 소설 ‘어부의 자리(교황의 자리)’ 이야기다.

소설이 출간된 15년 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탄생했다. 우연히도 그의 배경과 상황 모두가 거의 일치해 이 작품은 일종의 예언적 글로 비쳐졌다. 그는 애당초 후보 대상엔 있지도 않았다. 바오로 1세가 별안간 서거하고 후계자를 뽑는 데 실패하자, 중도적 인물이었던 그가 예상치 않게 선출되었던 것이다.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 국가 출신 인물이 선출되면서, 그의 조국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구유럽 체제가 막을 내리고 소련까지 붕괴되었다. 이 책은 당시 닉슨 대통령에게 감명을 주었고, 급기야 그는 중공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중공은 ‘죽(竹)의 장막’ 고립에서 세계 속으로 나오게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첫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시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엎드려 입맞춤을 해 한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뒤를 이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명석한 학자이자 최고의 이론가로, 역사상 처음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임하고 교황직을 물려주는 선례를 남겼다.
이에 따라 1282년 만에 비유럽권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으로 제266대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순금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방탄막 없는 소형차를 이용하며, 화려한 관저가 아닌 소박한 일반 사제들의 공동숙소에서 살았다. 또 마약과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도 개의치 않고 아무 동행 없이 빈민촌을 찾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가난한 자들의 목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 88세로 선종했다. 나무관을 택하고 ‘장식 없는 무덤에 이름만 새겨 달라’고 한 교황은, 돌아가시기 전 ‘전쟁을 끝내달라’고 당부했다.
13세기 ‘빈자의 성인’으로 낮은 곳에서 살다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그대로, 마무리도 아름답다.
성하(聖下)의 영원한 안식과 평온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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