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시즌2? 하려면 틀니 해야…영화 해야하나 고민중”
“처음 ‘오징어 게임’을 만들 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긴 했어요. 방탄소년단·봉준호 감독에게서 볼 수 있듯,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 같아요. 등장하는 게임은 우리의 단순한 옛날 놀이지만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28일 열린 화상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흥행 돌풍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하루하루 기록이 경신되고 있는데 창작자, 아티스트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 아닐까 싶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도드 1위 했을 때 이런 기분인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웃었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현지시간) 닷새째 넷플릭스 전세계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현재 미국·영국 등 76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7일 미국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 2021’에 참석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는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비(非)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황 감독은 작품의 인기 비결을 묻자 “놀이들은 단순한 반면, 인물에 대한 서사는 자세하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해 몰입할 수 있다”며 “서바이벌 데스 게임물이면서 휴먼물로 연령과 인종을 초월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킹덤’ 덕에 갓이 유행했대서 찍으면서 ‘달고나 같은 게 비싸게 팔리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는데 그게 실제가 돼서 얼떨떨하다”며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인기작이 K콘텐츠 ‘오징어 게임’이 됐으면 하는 욕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인기에 해외 러브콜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해외에서 연락이 오고 있기는 하다. 아직 접촉할 정도로 정신이 있지는 않다”며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를 구상 중인데 한국이나 미국에서 모두 만들 수 있는 세팅이다. 뭔가 하나를 구상하고는 있다”고 귀띔했다.
◆글로벌 시장 겨냥…단순한 한국 놀이 선택
드라마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 6개의 게임이 등장한다.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는 그는 “전세계 시청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놀이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첫 게임은 무조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쇼킹한 대학살, 집단 게임으로 수백명이 모여서 할 때 가장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마지막도 무조건 ‘오징어 게임’으로 생각했어요. 게임의 룰을 따른다기보다는 그 도형 안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대결을 상상했죠. 내가 어릴 때 했던 게임 중 가장 격렬한 것이라, 이걸 목숨 걸고 하는 것에 대한 처절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오징어 게임’은 2008년부터 기획됐다. 당시 영화로 극본을 쓴 그는 난해하고 기괴하다는 평가에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08년에 처음 구상하고 2009년에 영화로 극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위는 세고 돈은 많이 드는 작품이었죠.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낯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투자자, 배우들에게 다 거절을 당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 이런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이 됐고 현실감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네요.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 세상이 와 버린거죠. 슬프게도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대해서는 “형식과 수위, 길이 등에 제한 없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오징어 게임’은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상당히 위험성이 있는 작품인데 글로벌 OTT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며 금기의 영역을 깨고 있는 것 같다”며 “영화가 할 수 없는 시도였다. 다들 안 된다고 했는데 넷플릭스가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용기를 가지고 시도할 수 있다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고 짚었다.
◆여성 혐호? 말도 안돼
크고 작은 논란에도 입을 열었다. 특히 한미녀 캐릭터와 바디페인팅을 두고 여성 혐오 논란 등이 제기됐다.
황 감독은 “한미녀는 자신의 몸을 통해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을 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보디페인팅에 대해서는 “여성의 도구화가 아니고, VIP로 대변되는 권력자, 그 사람들이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지, 사람을 사물화한다는 의미로 만들었다”며 “보면 다 여자가 아니고 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보디페인팅으로 있다. 여성의 도구화라고 보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인간을 도구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전화번호 유출 건에 대해서는 “끝까지 자세하게 확인 못 한 부분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 제작사 쪽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만화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 등 일본 작품을 짜깁기한 것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그는 “2008년 작품을 구상할 때 만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을 봤다”며 “그러한 작품이 영감을 주기는 했지만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데스 게임물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작품들과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인 것 같다. 먼저, 게임보다 사람이 보이는 것. 다른 게임물은 천재적인 사람이 게임을 풀어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오징어 게임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 감정에 집중한다. 또 다른 게임물들은 천재적인 영웅이 주인공이다. 여기엔 어떠한 위너(승자)도 없고, 영웅도 없고, 천재도 없다. 그저 루저(패배자)들의 이야기다.”
황 감독은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하고, 지난해 개봉한 범죄액션 영화 ‘도굴’을 제작하기도 했다. 코디미, 시대극, 드라마 등 장르와 소재가 다양한 것이 강점이다.
그는 “성격이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이다. 뭔가 한가지를 하면 겹치고 싶지는 않다”며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이 창작의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머쓱해했다.
‘오징어 게임’도 그러한 도전 정신으로 탄생했다. 그는 “이 작품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게임물이 잘못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마니아층만 즐기게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판타지적 요소와 리얼한 요소를 동시에 구현하는 게 연출에 있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고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돌이켰다.
‘시즌 2’ 계획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작품에서는 특별 출연한 배우 이병헌이 맡은 프론트맨에 대한 서사, 주인공 기훈(이정재)이 딸에게 돌아가지 않고 뒤를 돌아보는 장면 등 시즌 2를 암시하는 떡밥(복선)들이 이미 여러개 존재한다.
“시즌 1 하면서 너무 힘들긴 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안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같네요. 시즌 1을 하면서 이가 6개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 임플란트인데, 시즌 2를 혼자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면 틀니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이번에 ‘오징어 게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영화를 하고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직은 왔다 갔다 해요.”
황동혁 감독은 누구?
▲1971년 출생 ▲서울대학교 신문학과 졸업 ▲2007년 영화 ‘마이 파더’ 데뷔 ▲2011년 영화 ‘도가니’ 연출 ▲2012년 제3회 올해의 영화상 최고 작품상 ▲2014년 영화 ‘수상한 그녀’ 연출▲2017년 영화 ‘남한산성’ 연출 ▲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2020년 영화 ‘도굴’ 제작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