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의 기다림이 마침내 끝났다. LG 트윈스가 왕좌에 올랐다.
LG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쏠 KBO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5차전에서 KT 위즈를 6-2로 물리쳤다.
1차전을 패한 뒤 내리 4연승을 일궈내며 LG가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29년이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한 LG는 ‘신바람 야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KBO리그 진입 첫 해부터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4년 뒤인 1994년 다시 한 번 페넌트레이스에 이어 KS까지 제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LG가 다시 한 번 왕좌에 오르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 내다본 이는 없었다.
최강팀으로 자리를 굳히는 듯했던 LG는 세 차례(1997·1998·2002년) 더 KS에서 정상을 노크했다. 그러나 번번이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만 추가했다.
이후 LG를 기다리고 있는 건 기나긴 영욕의 세월이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와 KS 6차전에서 9-6으로 앞서다 9회 이승엽에 동점 3점포, 마해영에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무릎을 꿇은 LG는 이듬해부터 2012년까지 가을야구 초대장조차 받지 못했다.
암흑기가 길어지며 야구팬들의 조롱도 피할 수 없었다.
‘DTD’ 이론은 LG를 오래도록 괴롭게 한 은어였다. 야구팬들은 2005년 김재박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인터뷰 내용을 ‘Down Team is Down’으로 문법에 맞지 않게 변형했다. 그리고 LG가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다가도 중반 이후 고꾸라질 때면 어김없이 들고 나왔다.
팀 성적이 나지 않자 LG는 ‘우승 청부사’ 역할을 해줄 사령탑을 계속해서 공수했다.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의 2군을 이끌던 박종훈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기도 하고, ‘재계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류중일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기도 했다. 90년대 신바람 야구의 일원이었던 LG 출신 류지현 감독에게 정상 도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LG의 염원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정규시즌 2위에 올라 11년 만의 가을야구와 함께 플레이오프 직행을 일궈내고도 두산에 1승3패로 밀려 KS 진출이 좌절됐다. 지난해도 2위로 시즌을 마친 뒤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1승3패로 져 KS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 사이 KBO리그를 대표하고, LG가 자랑했던 스타 선수들도 하나 둘 우승 반지 없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영원한 적토마’ 이병규가 2016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고, ‘미스터 LG’ 박용택이 2020시즌 뒤 은퇴했다. 선수로서 최정상에 선 이들은 나란히 자신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남겼지만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생전 KS 최우수선수(MVP)를 위해 사둔 롤렉스 시계와 우승 후 마시기 위해 준비한 일본 오키나와산 아와모리 소주도 20년 넘게 봉인돼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정상을 향한 간절함이 점점 커진 가운데 2023시즌 LG는 여느 때보다 힘차게 진격했다.
정규시즌 외국인 투수 아담 플럿코, 타자 오스틴 딘의 맹활약을 앞세워 상위권 싸움에서 앞서나갔다. 지난 겨울 프리에이전트(FA)로 영입한 포수 박동원은 시즌 초반 연일 홈런포를 쏘아 올려 팀의 순위 다툼에 힘을 보탰다.
큰 고비 없이 선두 질주를 계속한 LG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시즌을 잘 치르고도 가을만 되면 약해지던 모습도 더는 없었다.
LG는 1차전을 2-3으로 아쉽게 패했지만 이후 2차전에서 불펜을 총동원해 짜릿한 역전승을 따내 분위기를 바꿨다. 흐름을 탄 LG는 3차전에서 8회 KT 박병호에 역전 투런포를 얻어 맞고도 9회 오지환의 재역전 스리런 아치로 극적인 승리를 차지했다. 기세가 오른 LG는 4, 5차전까지 연거푸 잡아내며 올 시즌 최강팀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