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렸던 배우 남궁원(90·본명 홍경일)이 5일 세상을 떠났다. 영화계에 따르면, 남궁원은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수 년 전 폐암 투병을 하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한다.
1934년생인 남궁원은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당시 배우 중엔 드물게 180㎝에 달하는 키에 당당한 풍채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작품 활동이 뜸해졌고, 이후엔 아들인 홍정욱 전 의원의 아버지로 더 크게 알려졌다. 홍 전 의원은 아버지를 빼닮은 얼굴로 유명하다.
경기도 양평 출신인 그는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노필 감독의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데뷔했다. 워낙에 뛰어난 외모 때문에 전국 유명 감독 캐스팅 제안을 받았으나 연예인에 뜻이 없어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영화 일을 시작했다. 이후 마지막 영화인 ‘애'(1999)까지 출연 영화만 340여편에 달한다.
전성기는 1960~70년대였다. 초창기 대표작은 ‘빨간 마후라'(1964) ‘내시'(1968) 등이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007시리즈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한국에서도 스파이 액션물이 만들어졌는데, 남궁원이 그런 영화 주인공을 도맡기도 했다. ‘국제간첩'(1965) ‘극동의 무적자'(1970) 등이다. 이 시기에 대종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등을 차지했고 2016년엔 은관문훈장을 받았다.
1960년대엔 남성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다면, 1970년대에 들어서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2) ‘충녀'(197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 이따라 출연하며 나약한 남성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1980년대엔 이두용 감독 영화에 나오며 주로 악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2011년엔 데뷔 52년만에 처음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때 나온 작품이 ‘여인의 향기’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8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조화와 부의는 받지 않는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춘자씨와 홍 전 회장을 포함해 1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