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이 4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에 사실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른바 ‘슈퍼 화요일’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자격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것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일정부분 제거됐다는 평가나 나온다.
콜로라도 대법 판결 파기 “주에 권한 없어”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수정헌법 14조3항을 근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9명의 대법관 전원이 이러한 판결에 동의, 만장일치로 결정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헌법에 따라 연방 공직자와 후보자에 대해 수정헌법 14조3항을 집행할 책임은 주(州)정부가 아닌 의회에 있기 때문에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2024년 대통령 예비 투표에서 제외하도록 명령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봤다.
주정부 공직자와 달리, 대통령 등 연방정부 공직자와 관련한 후보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결정은 주정부가 내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나아가 대법원 다수의견은 수정헌법 14조3항에 근거해 연방공직자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의회가 관련 절차 등을 명시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봤다.
만약 미 의회가 아니라 개별주에서 이를 결정한다면 투표를 마친 뒤 수백만명의 표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는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AP통신은 대법관들이 ‘슈퍼 화요일’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하루 전, 각 주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투표용지에 기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북전쟁 직후 만들어진 헌법 조항을 발동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반란 가담 여부는 판단 안해
다만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제 반란에 가담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 지지자들을 선동해 2021년 1월6일 의회 폭동 사태를 촉발한 것이 반란에 가담한 행위라고 보고 주정부에 경선 투표용지에서 그의 이름을 빼라고 판결했다.
헌법을 지지하기로 맹세한 공직자가 모반이나 반란에 가담할 경우 다시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규정한 수정헌법 14조3항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상고했고 연방대법원이 심리에 착수했다. 지난달 8일에는 구두변론절차를 열고 양측 입장을 직접 청취하기도 했다.
원고측은 의회 폭동 사건이 반란에 해당하며, 백악관 밖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지옥처럼 싸우라”고 촉구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의해 선동됐다고 주장했다. 14조3항이 명시한 공직자에 대통령을 포함할 수 없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고도 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1·6 의회 폭동이 반란이 아니라는 점, 설사 반란으로 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폭도들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정헌법 조항은 대통령직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제외한다고 트럼프측 변호사들은 주장했다.
대법관들은 구두변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란 가담 여부보다는 해당 조항을 의회 승인 없이 취할 수 있는지, 대통령이 해당 조항에 포함되는지 등에 집중했고 소송에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콜로라도 대법원 판단을 뒤집으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자격에 사실상 문제가 없다고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경선 참여 박탈 우려 덜어 다른주에도 영향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만에 하나 경선 참여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완전히 덜어내게 됐다.
콜로라도주 뿐만아니라 메인주와 일리노이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었는데, 이날 대법원 판결이 다른주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언론들은 대선 후보가 사실상 확정되는 ‘슈퍼 화요일’ 경선을 하루 앞두고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 여부를 결정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AP통신은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선 경선에 복귀시켰고, 공화당 전 대통령에게 국회의사당 폭동 책임을 물으려는 주정부 시도를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라는 특성이 트럼프의 경선 후보 자격 유지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보수성향 대법관 3명이 임명되면서 보수 색차가 짙어졌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이날 한 건의 사건을 선고하겠다고 미리 예고한 것도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보수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법원은 대통령 선거라는 불안정한 시기에 정치적으로 제기된 사안을 해결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법원의 판단은 국가적인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춰야 한다”며 “9명의 대법관 모두 이 사건 결과에 동의하고, 그것이 미국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의 승리”…원고 “대법원, 민주주의 책임 포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이후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미국을 위한 큰 승리”라고 반겼다. 이날 오후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반응을 내놓을 예정이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원고와 콜로라도 주정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원고를 대리한 마리오 니콜라스 변호사는 NYT에 “대법원이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포기했다”면서 “오늘 법원의 비겁함이 미래의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대법원 결정으로 또 다른 의회폭동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나 그리스월드 콜로라도주 국무장관은 SNS에 “대법원 판단에 실망했다”며 “콜로라도는 선서를 위반한 반란자를 투표에서 제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