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일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정사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화려한 검사 이력을 발판으로 단번에 대권을 거머쥐었으나, 임기를 3년도 채우지 못하고 파면돼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며 국회가 주장한 탄핵소추 사유 5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위 사유들이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오전 11시22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그를 파면했다.
헌재는 본안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앞서 탄핵심판 청구의 절차적 적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절차 쟁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비상계엄 선포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계엄 포고령 1호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정치인·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 등 쟁점에 대해 각각 판단을 밝혔다.
가장 먼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한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계엄 선포는 협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에 군경을 동원해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봤다.
야당의 전횡으로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고 있어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윤 전 대통령의 인식이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하나, 이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책임이라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계엄 선포가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경고성·호소용 계엄’은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절차상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도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엄의 배경으로 언급된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쟁점인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을 두고는 “계엄 해제 요구권을 비롯한 국회의 권한행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하려는 행위 “라며 “헌법 제77조5항(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등 헌법상 권한 및 계엄의 상황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인이 시민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이 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는 것도 사실로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포고령 1호 발령에 대해 헌재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 해제 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하에서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 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것에 대해서는 선관위의 독립성을 위반한 행위라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방부 장관에게 병력을 동원해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라고 지시했고, 선관위 청사에 투입된 병력은 출입을 통제하며 당직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전산시스템을 촬영했다”며 “이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으로 영장주의를 위반하고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쟁점인 정치인·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행위라고 봤다.
헌재는 “개별 법관의 신분보장 및 재판상 독립에 위협을 주는 행위는 종국적으로 법원 전체의 독립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져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법치주의 및 권력분립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사법권 독립의 제도적 기반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도의 주체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만 명시했다.
헌재는 “국방부 장관은 필요시 체포할 목적으로 국군방첩사령관에게 국회의장, 각 정당 대표 등 14명의 위치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며 “피청구인은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전화하여 국군방첩사령부를 지원하라고 했고, 국군방첩사령관은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위 사람들에 대한 위치 확인을 요청했다”고 결정문에 썼다.
위 5가지 쟁점과 관련된 윤 전 대통령의 행위를 모두 위헌·위법 행위로 인정한 헌재는 그를 파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오랜 기간 국가긴급권의 남용에 희생당해 온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짚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접수한 뒤 11차례 변론을 거쳐 지난 2월 25일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후 한 달 넘게 평의를 거듭한 뒤 이날 선고했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재 변론기일에 출석, 최후 진술을 통해 “전시·사변 못지않은 국가 위기 상황”,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계엄” 등을 강조했다. 나아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에 집중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고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면이라는 결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