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임기 마지막해인 2022년 신년 특별사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027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복권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는 31일자로 이들을 포함한 3094명에 대한 2022년 신년 특별사면·복권 등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특별사면·복권 대상에는 ▲일반 형사범 2650명 ▲중소기업·소상공인 38명 ▲특별배려 수형자 21명 ▲선거사범 315명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 65명 ▲노동계 및 시민운동가 2명 ▲낙태사범 1명 등 총 3092명이 포함됐다.
취임 후 처음 단행된 2018년 신년 특별사면(6444명)과 2019년 3·1절 100주년 특별사면(4378명), 2020년 신년 특별사면(5174명)과 비교하면 다소 줄어들었다. 2021년 신년 특별사면 대상자(3024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특별사면·감형·복권 대상자를 심의·의결하기 위해 소집한 임시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서민들의 민생안정과 국민 대화합을 이루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정치인 사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임기 말 국민통합을 고려해 한 전 총리와 함께 사면을 결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특별사면·복권 결정에 대해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고령이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니까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런 점도 생각한다”며 추후 사면 접근 방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31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뒤, 전직 대통령 중 가장 긴 4년 9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외부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며 어깨와 허리디스크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엔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 진행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1차 전체회의 때까지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대상자 포함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뒤 21일 열린 2차 회의 때 기류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는 올해 초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면론을 제기할 때만 해도 줄곧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근까지도 “검토한 바 없다”며 사면론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측에서 형(刑) 집행정지를 신청하지 않아 요건이 성립되지 않자, 청와대가 사면 방침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전 총리는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0만 원을 확정받았다가 만기 출소했다. 10년 간 피선거권 박탈됐다가 이번에 특별 복권됐다.
검찰의 부당한 정치 수사로 인한 피해를 한 전 총리가 입었다는 게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확정 판결 당시 “진실과 정의가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일 것이라는 기대가 참담히 무너졌다”며 “안타까움과 실망 너머 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올해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 사면에 대한 연계 검토 질문에 가능성을 아주 닫지는 않았었다. 문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정치인 사면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써 미리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계기를 넘긴다면 문 대통령 임기 내 사면권 행사는 정무적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반영된 게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3·1절 기념 특사의 경우 차기 대통령 선거 직전이라 대선 개입 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최종 결단에 따라 향후 대선 정국에 어떤 식으로든 큰 파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통합을 전제로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입장의 번복은 물론, ‘5대 중대 부패범죄’는 양형을 강화하고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을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 파기라는 비판도 예상된다.
당장 국민의힘에서는 한 전 총리의 복권에 대한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끼워넣은 것이라는 취지의 공세를 폈다.
임태희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종합상황본부장은 이날 CBS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 특사는 당연한거라고 본다”면서도 “한 전 총리를 사면(복권)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떤 모양새로 할지, 비난 여론을 피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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