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미국 사회에서 반(反)이슬람 정서가 짙어지는 가운데, 미국 명문대 동문들이 학교가 하마스를 적극 비판하지 않는다며 기부 중단에 나서고 있다.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하버드,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미국 명문 대학 동문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관련 모교가 적극 비판에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기습 공격 이후 학교가 하마스를 적극 비난하지 않고 있으며, 교내 반(反)유대주의 움직임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상당수 고액 기부자들은 학교 기부를 중단하거나 향후 기부 계획을 재고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하버드에 4200만달러(약 570억원) 이상 기부한 빅토리아시크릿 창업자 레슬리 웩스너 부부는 최근 하버드가 교내 반(反)유대주의를 방치했다며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유력 정치인 밋 롬니와 억만장자 세스 클라먼, 벤처 자본가 빌 헬먼 등 저명한 하버드 동문들도 교내에 유대인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하버드에 보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동문들도 학교가 하마스를 명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며 기부 중단 선언에 나섰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5000만달러(675억여원) 이상 기부한 마크 로완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는 WSJ과 인터뷰에서 “학교가 반유대주의 관련 목소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며, 총장과 이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기부를 끊겠다고 밝혔다.
같은 대학 출신인 존 허츠먼 전 유타 주지사도 총장에게 기부를 중단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투자자 조너선 제이컵스는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매년 1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런던=AP/뉴시스] 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모인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끝내라”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2023.10.25.
[런던=AP/뉴시스] 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모인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끝내라”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2023.10.25.
기부금 감소는 고액 기부자에 의존하는 일부 대학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해 6월30일 마감된 회계연도를 대상으로 한 미국 교육 발전 및 지원위원회 연구에 따르면 1% 미만의 고액 기부자(100만 달러)가 낸 기부금이 전체 미국 대학 기부금의 57%를 차지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선 기부금이 대학 운영 예산의 17%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 유력 가문은 오랜 기간 대학 기부를 일종의 의무로 여겨왔다. 대부분 고등 교육에 대한 감사 표시로 기부하지만, 일부는 자녀 입시에서 이점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기부한다.
일각에선 수년간 쌓인 모교의 좌파적 정치 성향에 대한 불만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터진 거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진보적 집단 사고가 대학을 장악했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고, 일부 졸업생들은 이에 반하는 동문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출신인 헤지펀드 매니저 클리프 애스니스는 지난 16일 모교 기부 중단을 밝히면서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진정한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에 오랜 기간 실망해 왔다”며 “돈으로 이러고 싶진 않지만, 이게 희망이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세계 최대 자선 자문기관인 록펠러 자선자문단의 매 홍 지역 부사장은 “기부자들은 모교 기부를 종교적 십일조로 여겨왔다”며 “앞으론 훨씬 더 복잡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