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인구가 많은 10개국 가운데 최고 지도자가 70대 이상인 나라가 인도 1곳이었으나 현재는 8개국에 달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70, 80대 정치인의 손아귀에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2014년 퇴임한 만모한 싱 인도 전 총리는 퇴임 당시 82살이었으며 후임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취임 당시 64살이었다.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등 나머지 두 나라에서도 이번 달 선거 결과에 따라 70대 지도자가 등장할 예정이다.
2014년 2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2세였으며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60대였다. 엔리크 페냐 니에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불과 47살이었다.
이처럼 각국 지도자의 연령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독재자 장기 집권, 민주국가의 진입 장벽이 원인
우선 독재자들이 권력을 강화해온 점이 꼽힌다. 시주석이 2022년 관례를 깨고 69살의 나이에 세 번째로 주석에 취임했다. 47살에 처음 대통령이 된 푸틴은 25년 동안 권좌를 지키고 있다. 강력한 도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47살의 나이로 최근 교도소에서 숨졌다.
민주국가들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선거 승리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기성 정치인들이 크게 유리한 것이다. 현재 73살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순조롭게 세 번째 총리에 당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76살인 세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도 지난달 총선에서 대승을 거둬 사상 처음으로 다섯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16년 째 권좌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중순 인도네시아에서 72살의 국방장관이 대통령에 당선했다. 가구공장 사장에서 소도시 시장을 거쳐 2014년 대통령이 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뒤를 잇게 된다. 위도도 대통령은 올해 53살이다. 10년 전 위도도 대통령의 당선은 세계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희망이었다.
영국 채텀하우스 아태프로그램 책임자 벤 블랜드는 “세계가 빠르게 변하는데 젊은 지도자들이 거의 없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해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70대 이하의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81살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77살의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고령에 따른 실수를 자주 범하고 있다. 바이든 은 압델 파타 알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멕시코 대통령이라고 불렀고 트럼프는 정적 니키 헤일리 대선 경선 후보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라고 불렀다. 올해 82살이 된 미치 매코낼 미 상원 공화당 원내 총무는 지난해 여름 기자들 앞에서 한동안 말을 못하고 얼어버렸다. 결국 그는 오는 11월 원내총무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늙은 지도자들을 몰아내기 힘든 것은 그들이 기득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정치인 연령 상한 제한하자는 주장 나오나 실현 힘들어
이에 따라 미국에선 연방공무원의 정년을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헤일리 후보는 정치인이 75살이 되면 정신능력 검증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 중 75살이 넘게 되는 정치인들의 출마를 금지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들이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9살에 최연소 대통령이 됐고 올해 34살의 총리를 임명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평균연령이 높지만 이처럼 젊은 지도자들의 등장이 훨씬 손쉽다. 조르쟈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022년 45살에 총리가 됐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 46살이다.
고령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이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미중 대결과 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5차원의 체스를 둬야 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평균 연령 높은 유럽 각국엔 젊은 지도자 다수 등장
그러나 인공지능과 기후 변화 등 21세기의 급속한 변화에 늙은 지도자들이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의구심도 못지 않게 크다.
정치학자들은 고령의 할아버지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젊은 층의 투표 참여율이 낮아지면 정치 지도자들이 젊은 층의 관심사를 덜 주목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동 보호에 대한 예산 배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72살의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최근 음력설 연설에서 “젊은 부부가 자녀를 낳기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경력을 쌓고 부부끼리 잘 지내는 데만 관심이 크다며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경고한 것이다. 리 총리는 올해 20살 연하의 후임자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줄 예정이다.
고령의 지도자들 중 젊은층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태어난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달 슈퍼볼 미식축구 결승전 관련 영상을 담은 틱톡 영상을 올리고 “정말 재밌다”고 썼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한 72살의 프라보위 수비안토 예비역 장군이 인스타그램에 고양이를 안은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무단으로 선거 유세를 펑크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82살의 버니 샌더스 미 민주당 상원의원과 74살의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수도 진보적인 젊은 층 사이에 영향력이 크다.
케빈 멍거 펜실베니아대 정치학과 교수는 앞으로 10~15년은 더 베이비붐 세대 지도자들이 힘을 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