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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K-영화의 고민, 엉터리 번역과 자막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 하다."

2023년 0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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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대국에 이어 인간과 AI의 번역 대결이 2017년에 펼쳐진 적이 있다. 바둑에서의 거의 완승과 달리 번역에서는 AI가 인간에게 참패했다.

일례로 ‘강아지가 이불에 실례를 했다’를 AI가 ‘He was rude to the blanket’ 식으로 번역한 거다.

이 말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실례’를 대소변으로 알지만 기계는 이를 단지 ‘무례함’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입력된 데로 결과가 나오는 기계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하는 번역이 언제나 옳은 것 만은 아니다.

‘시간은 화살같이 날아간다’는 ‘Time flies like an arrow’를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로 오역 되기도 하니 말이다. 허긴 ‘정신은 강하나 육신은 허약하구나’라는 ‘The spirit is strong, but the flesh is weak’ 성경 구절을 애주가는 ‘술은 좋은데 고기(안주)가 시원찮다’고 한다는 풀이가 농담이기는 해도 단어나 문장에 대한 해석의 다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때 할리우드 스타 멜깁슨이 만든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도 ‘예수의 수난’이 아닌 ‘예수의 열정’으로 신문들에 소개된 적도 있는가 하면 소설 ‘Fifty Shades of Grey’가 ‘그레이의 50개 그림자’로 잘못 번역되기도 했다. 여기서 shades라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색의 미묘한 차이’를 가리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주인공의 미묘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나타낸 것일 텐데 말이다. 더 나아가 국제적인 실수가 생긴일도 있었다. 1977년 카터 전 대통령이 폴란드 공항에서 ‘폴란드 국민의 열망을 알고 싶다’고 한 인사말이 ‘폴란드 사람에게 욕정을 느낀다’로 엉뚱하게 통역 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는 사례가 그런 경우다.

그래도 이러한 오역이나 실수는 해명이나 사과로 해결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엄청난 역사의 결과를 야기한 경우도 적지는 않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 총리가 사용한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한 일본어 단어 때문에 미국의 원폭 투하가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단어는 ‘무시한다’ 혹은 ‘언급을 삼가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전자(前者) 즉, 항복 거부로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독서는 오독(誤讀)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誤譯)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결국 번역이란 작업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창작 행위나 다름없어 보인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느냐 아예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것이냐의 차이일뿐 말이다. 이처럼 중요한 번역의 문제는 각종 영상물들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손쉽게 다가오면서 더욱 민감한 이슈가 되었다.

특히 근자에 K-영화, K-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외국 시청자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겨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혼란과 오해를 일으켜 작품의 뜻이 왜곡 혹은 변질되어 전달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거다. 오래 전 한국의 뮤지컬 해외 공연에서 웃지 못할 자막이 있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세력을 둘러싼 갈등에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한다며 비난하는 말을 ‘하루는 감을 달라하고 다른 날은 배를 달라’는 식으로 된 영문 번역을 외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주 인용되는 예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야’라는 ‘We’re in the end game now’ 대사가 ‘이젠 가망이 없다’는 우리말로 번역 되었을 때 그 뜻은 전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와중에 인기 있는 작품들을 각 나라마다 자국어로 더빙된 것으로 볼 것인지, 자막으로 볼 것인지 선택하기 어려운 고민도 뒤따르고 있다고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원어와 더빙에 따라 감흥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해서 나오고 있는 말이 ‘더빙이냐 자막이냐’ 즉, ‘To dub or to sub, that is the question’이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이 역시 결국은 번역 후의 일이다. 그러니 아무튼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 하다.

관련기사 [김학천 타임스케치] 에스페란사…희망이 기적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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