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남자들이 여자들의 배란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때에만 잠자리를 함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사냥을 가거나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배란이 은폐된 상황에서 남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전략은 한 여자라도 확실하게 보호하며 자주 섹스를 하는 방법뿐이다. 인간도 다른 모든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의 성향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은폐된 배란은 인간 남성들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가정에 묶여 마음껏 뜻을 펼 수 없다고 투덜대는 남성들이 있지만, 결혼은 원래 남자가 원해 생겨난 제도라고 생각한다.”(137~138쪽)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의 남성 이데올로기에 강력한 폭탄을 던진 문제적 책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가 20주년을 맞아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로 돌아왔다.
과학자인 저자 최재천 교수는 1999년 ‘개미제국의 발견’과 2001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출간하며 과학 대중화의 포문을 열었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낯설기만 했던 진화론과 동물행물학이라는 과학의 새로운 학문을 경쾌하고 유려한 에세이로 풀어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이마에 써 붙인 채 돌아다닌다. 서로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우선 서로의 본성에 대해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앎’의 학문인 과학이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이 책은 여성과 남성 모두 다른 성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실천하며 권위주의에 입각한 수직사회가 아닌 민주적인 수평사회로 이루어진 여성의 세기를 보여준다.
“여성시대의 문은 이미 열렸다.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성들보다는 오히려 동료 남성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는 날 정작 해방의 희열을 맛볼 이들은 바로 우리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 책임의 굴레를 벗고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이들은 바로 우리 남정네들이다.”
20주년 기념판에는 여성학자 정희진, 인류학자 박한선, 경제학자 이철희와 함께한 특별 좌담을 수록,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우리 사회 안팎에서 일어났던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관한 심도 있는 논평을 통해 이 책의 시대성을 짚어봄과 동시에 오늘날의 담론을 새롭게 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