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7일 국정연설에서 대권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한 뒤 “민주주의 수호”를 다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여러차례 언급하며 차별화에 주력했다.
이번 국정연설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세번째로, 첫 임기 마지막 연설이다. 통상 마지막해 국정연설은 재선운동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날 연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나토·낙태·국경 등 이슈별로 트럼프 때리기
바이든 대통령은 무려 13차례 “전임자(predecessor)”를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실정이나 정책 방향을 적극 비판하면서 대권 상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들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며 내놓은 발언을 겨냥해 “내 전임자인 전직 대통령은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얘기한다”며 “전직 대통령이 실제로 러시아 지도자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말한 것이다.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바이든 대통령 의회 인준을 막기 위해 일으킨 의회 폭동 사건을 거론하면서는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막으려는 반란자들은 애국자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면서 “내 전임자와 여기 있는 일부는 1월6일에 대한 진실을 묻어버리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가장 위대한 컴백 스토리를 쓰고 있다”며 집권 1기 동안 1천500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인플레이션 및 실업률 완화 등의 성과를 강조했다.
자신의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에 맞서 미국이 자신의 임기 중에 이미 ‘위대한 컴백’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내 목표는 대기업과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정당한 몫을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연방 적자를 3조 달러 더 줄이는 것”이라며 부자증세를 공약했다.
"The way to make the tax code fair is to make big corporations and the very wealthy finally pay their share." pic.twitter.com/6tPIe0dsOe
— The White House (@WhiteHouse) March 8, 2024
특히 그는 법인세 최저세율 현재 15%에서 21%로 인상을 비롯해 대형 제약회사와 석유회사, 전용기, 대기업 임원 급여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종료 등을 밝힌 뒤 “공화당은 사회보장제도를 삭감하고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것이나 나는 사회보장을 보호·강화하며 부유층이 정당한 몫을 지불하도록 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이어 “내 전임자는 (여성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로 결심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상당수와 내 전임자는 재생산 자유에 대한 국가적인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며 “로 대 웨이드를 다시 이 땅의 법으로 복원할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국경안보 강화 방안을 포함한 상원의 초당적 법안이 하원 반대로 폐기된 점을 지적하면서는 “내 전임자가 의회 공화당원들에게 법안을 막으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다”면서 “전임자가 보고있다면 정치놀음과 법안을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대신 나와 함께 법안 통과를 촉구하라”고 압박했다. 논란이 됐던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을 겨냥, “우리 국가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이민자들을 악마화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But Israel must also do its part. Israel must allow more aid into Gaza and ensure that humanitarian workers aren’t caught in the cross fire." pic.twitter.com/PRHyLnpgcP
— The White House (@WhiteHouse) March 8, 2024
끝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평생 자유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정직, 품위, 존엄성, 평등, 타인에 대한 존중,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증오가 설자리가 없게 하는 것”이 미국을 정의해 온 핵심적인 가치라고 말한 뒤 “내 나이대의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자. 원한과 복수, 보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고령논란 정면 돌파 시도…”지향점 알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고령 논란’도 직접 언급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그는 현재 81세로 이미 최고령 타이틀을 지니고 있으며, 재선에 성공할 경우 86세까지 임기를 수행한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신체·정신적 건강에 우려를 표하고 있고, 공화당은 이부분을 주요 공격포인트로 삼고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대때 시작된 자신의 정치경력을 언급한 뒤 “너무 어리다”, “너무 늙었다”라는 말을 모두 들었다며 “젊건 늙었건, 나는 언제나 무엇이 지속되는지, 우리가 지향할 곳(North Star)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늙었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낡았느냐에 대한 것이다”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필요하다. 지금 여러분들은 나의 생각을 듣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내내 높고 큰 목소리를 유지했는데, 정정한 모습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이스라엘, 가자에 더 많은 지원 허용해야”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인 민주당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가자지구 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보다 많은 구호품 반입을 허용하고 2국가 해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I’m demanding a BAN on assault weapons and high-capacity magazines." pic.twitter.com/Z5gmWg1vYP
— The White House (@WhiteHouse) March 8, 2024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가 민간인 사이에 숨어 활동하는 만큼 이스라엘은 추가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엔 가자지구의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가자지구 해안에 구호품 수송을 위한 임시 항구를 건설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고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총격전에 휘말리지 않도록 가자지구에 더 많은 지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가 미래를 바라볼 때, 현 상황의 유일한 진정한 해결책은 ‘두 국가 해법’뿐”이라며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모든 아랍 이웃 국가 간 평화를 보장하는 다른 길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휴전 협상은 교착상태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의회 본회의장)엔 하마스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의 가족들도 있다”며 인질들의 귀환을 약속했다.
한국과 파트너십 언급…북한 문제는 얘기 안해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국정연설에서는 한국 역시 한차례 언급됐다.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동맹국들 중 하나로 거론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관행에 맞서고 있다.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서있다”면서 “태평양의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도서국 등과의 파트너십을 활성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는 “미국의 최첨단 기술을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며 “나는 중국과의 갈등이 아니라 경쟁을 원한다”고 말했다.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북한은 이날 연설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와 2022년에도 국정연설 당시 북한에 관해 별도로 시간을 내어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미국이 처한 국내외적인 상황을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격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방침을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내 전임자(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는 푸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지도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면서 “나는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의회에서 막혀있다고 지적한 뒤 “의회에 말한다. 우리는 푸틴에 대항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를 촉구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로 시선을 돌려 “1월 6일(2021년 1월6일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과 2020년 선거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선거를 훔치려는 음모는 남북전쟁 이후 우리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의 선거 결과 불복 및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등에 비판의 날을 세운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내 전임자와 여러분 중 일부(공화당 극우 성향 의원들)는 1월6일의 진실을 묻으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 위협은 남아 있으며 민주주의는 지켜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가장 위대한 컴백 스토리를 쓰고 있다”며 집권 1기 동안 1천500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인플레이션 및 실업률 완화 등의 성과를 강조했다.
자신의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에 맞서 미국이 자신의 임기 중에 이미 ‘위대한 컴백’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내 목표는 대기업과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정당한 몫을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연방 적자를 3조 달러(3천985조 원) 더 줄이는 것”이라며 부자증세를 공약했다.
특히 그는 법인세 최저세율 현재 15%에서 21%로 인상을 비롯해 대형 제약회사와 석유회사, 전용기, 대기업 임원 급여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종료 등을 밝힌 뒤 “공화당은 사회보장제도를 삭감하고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것이나 나는 사회보장을 보호·강화하며 부유층이 정당한 몫을 지불하도록 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 등 연설 자리에 초청된 외빈 중 노조 관계자들을 특별히 거명하며 “월가가 이 나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이 나라를 만들었고, 노조가 중산층을 만들었다”고 역설했다.
사회 정책과 관련해서도 여성의 낙태권 보장, 기후변화 대응 등을 강조하며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에 선명한 대치선을 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의 임신 6개월까지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 재작년 대법원에서 폐기된데 대해 “미국인들이 만약 내게 ‘선택의 권리’를 지지하는 의회를 만들어 준다면 나는 ‘로 대 웨이드’를 이 땅의 법률로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리턴 매치가 확정된 상황에서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중산층과 진보 표심에 호소하는 정책을 선거 전략으로 펼쳐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최대 실정’으로 공격받는 불법 이민자 문제와 관련, 국경통제 강화 입법에 협조할 것을 공화당에 촉구했다.
동시에 ‘이민자들이 조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거론하며 “나는 이민자들을 악마화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에 입국한) 가족 구성원을 떼어 놓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전쟁과 관련,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공격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연설 하는 바이든
국정연설 하는 바이든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에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임시 항구를 가자지구 해안에 건설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를 통해 매일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인도적 지원의 양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밖에 “이스라엘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국가로 병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재차 강조했다.
작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 이후 친이스라엘로 치우친 정책이 기존 지지층 일부의 표심 이탈이라는 역풍을 몰고 온 데 따른 위기 의식이 이번 중동 관련 언급에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미군을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는 중국과의 경쟁을 원하지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고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관행에 맞서고 있으며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나는 태평양에서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도서국 등 동맹과 파트너십을 재활성화했다. 나는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중국의 무기에 사용될 수 없도록 확실히 했다”고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파상 공세를 받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설 내용을 반박했다.
그는 “푸틴은 바이든을 존중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강력해진 것은 내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1·6 사태 비판에 대해 “바이든이 이른바 ‘폭도’라고 부르는 이들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대선을 조작당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대선 패배가 사기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공화당의 반박 연설자로 나선 케이티 브릿 상원의원(42·앨라배마)은 “우리가 본 것은 내가 산 기간보다 실제로 더 오래 정치를 한 ‘직업적 정치인’의 연기였다”며 “우리의 군 통수권자는 지휘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세계는 안절부절하고 쪼그라든 지도자보다 더 나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