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내 연기됐다. 일정상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열렸어야 할 선거가 미뤄지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5년 동안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는 잠정적으로 미뤄졌다.
선거 일정상 대선이 치러졌어야 할 이날 우크라이나는 선거 없이 지나갔다. 현재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다. 헌법상 계엄령 아래 선거는 열리지 않는다.
만약 임기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20일까지 선거가 개최되지 않으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된 것으로 본다.
선거를 치르려면 휴전이나 종전으로 계엄령이 해제되거나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둘 다 현재로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
법률상 문제와 더불어 행정 현실을 고려한 문제도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20%가량이 러시아 점령 아래 있는데, 실효적 행정이 불가능한 이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작용한다. 행정력 부재를 이유로 이 지역을 선거구로 포함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가 해당 지역을 포기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 85%는 여전히 유권자 권리보다 계엄령 아래 놓인 국가의 존망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31일 CNN에 따르면 지난달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우크라이나 국민 15%만이 계엄령 중이더라도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전쟁 중에도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발언을 했지만, 석 달 뒤에는 지금은 선거를 열 때가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 뒤로 여전히 그는 전시 선거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심리학자 카테리나 빌로콘은 매체에 “전시 선거를 하면 국가 예산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매체는 격전지 동부 전선에 배치된 병사 6명과 인터뷰를 한 결과 이 중 5명이 현시점에서 대선 실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새로운 선거를 뒤 인사를 단행하면서 한동안 행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군 지휘 체계의 일시적 공백이 전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비판 여론도 공존하는 상황이다.
올렉시 코셸 우크라이나유권자위원회(CVU) 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 선거를 실시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점차 (지난해) 연말로 가면서 그 수치가 하락하자 이 생각에 냉담해졌다”고 직격했다.
코셸 의장은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우크라이나대사 등이 입후보하면 선거에서 기록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우크라이나 여론조사기관 사회·정치연구센터(SOCIS)가 지난 2월22일~3월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 대사와 대선 가상대결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조사의 오차범위는 ±2.1%였다.
잘루즈니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설 끝에 지난 2월 군 총사령관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그의 국민적 인기 때문에 정적(政敵)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동시에 잘루즈니 대사는 전쟁 중 젤렌스키 대통령과 의견 충돌을 빚었다. 잘루즈니 대사가 서방 당국자와 비밀리에 종전 회의에 참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