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이란을 이끌 최고 지도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란이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 속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이란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7개월 넘게 전쟁을 벌이면서 갈등이 고조됐던 중동 정세도 더욱 요동칠지 주목된다.
라이시, 차기 유력 최고지도자…사망으로 후임 물색 난항
이란에서 대통령직은 실질적인 이인자 자리로, 최고지도자가 정치적·종교적 최고 지위를 갖는다. 국가 재정과 군 통제 권한도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각) 대통령직은 최고지도자에게 충성스러운 자리이며, 종종 자신을 향한 비판에 방패로 삼는 “유용한 희생양” 역할을 맡는다고 평가했다.
이인자에 머물렀지만, 라이시 대통령은 최근 몇 달간 강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거론돼 왔다. 이란 지도부는 하메네이가 85세 고령에 병석에 있는 만큼, 수년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며 후계자 준비에 대비해 왔다.
신학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제자이기도 하다. 2021년 대선에서 투표로 대통령직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상 하메네이 지명으로 고도로 설계된 선거를 통해 낮은 투표율 속 당선됐다.
라이시 사망으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론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가 부상하고 있다. 다만 최고지도자 후임을 결정하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성직자 상당수는 세습이 이란 혁명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감에서도 인물난을 겪고 있다. 이란 헌법 제131조에 따라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지도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대통령 사후 50일 이내에 특별 선거를 열어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과도기 은행가 출신이자 하메네이의 비밀 기업 조직인 ‘세타드’를 14년간 이끈 모하마드 모크베르 제1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모크베르 부통령은 다만 차기 대통령 후보론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란 내부 위기…정치적 갈등에 여론 반감 악화
누가 차기 지도자가 되더라도 이란이 처한 국내외적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이란 정치는 개혁파나 온건파가 배제되면서 베일에 싸여있고, 전통적인 강경파와 극보수파는 균열을 내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 통치 기간 강경 노선으로 여론은 악화한 상태다. 특히 히잡 미착용 여성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 재투입으로 이란 정부는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가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사망한 사건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야기했다.
국제 제재로 인한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경제 침체도 여론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최근 이란이 직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도 내부 관심을 환기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었다.
대외적으로 이란은 배후 ‘저항의 축’ 대리 세력을 통해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란 대리 세력은 전방위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부와 국경을 접한 레바논 헤즈볼라는 연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으며, 예멘 후티 반군도 하마스와 연대를 표방하며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도 직접 마찰을 겪었다. 이스라엘이 지난달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 등이 사망하자, 이란도 같은 달 13일 이스라엘로 드론과 미사일 350여발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6일 뒤인 이란 중부 제3 도시 이스파한 인근 군사 기지를 공격해 대응했다. 다만 양측 모두 유의미한 피해는 없었으며, 이란과 이스라엘은 확전 가능성에 선 그으며 일련의 보복 공격을 우선 일단락했다.
미국과 마찰도 진행 중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하면서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다만 미국과 이란은 지난 1월 오만에서 중동 정세와 핵 프로그램 관련 간접 회담을 가졌으며, 지난주에도 유사 협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의 중동 및 국제분쟁 전문 앵커는 “이란과 중동 지역 모두 이보다 더 불안정할 수 없는 시기에 라이시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