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7) 2021년 올해의 색깔 ‘노랑’과 ‘회색’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그녀의 상대역 레트 버틀러 그리고 연인 멜라니와 애슐리. 비전통적이고 정열이 넘치는 ‘스칼렛(Scarlett)’의 이름은 빛나는 ‘빨강(scarlet)’을 뜻하고, ‘레트’의 이름은 ‘레드(Red)’를 연상케한다. 스칼렛은 이상하게도 애슐리에게 이끌린다. 하지만 단조로운 회색(잿빛)의 ‘애쉬(Ash)’를 연상시키는 ‘애슐리’는 ‘검정(Melanin’)을 뜻하는 ‘멜라니’와 결혼한다.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 독일의 에바 헬러가 쓴 ‘색의 유혹’ (원제: 색은 감정과 이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나오는 한토막이다. 이름과 색을 연관지어 인물들의 모습을 설명한 그녀는 색과 감정의 관계는 심리적, 겸험을 통한 역사적 전통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는 스칼렛 이름답게 그녀의 붉은 드레스, 붉은 주단이 깔린 층계, 레트가 전쟁터로 가기위해 마차와 스칼렛을 남기며 포옹하는 뒤로 전쟁의 붉은 화마 배경 등 스크린은 붉은 색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것은 빨강이 흔히 피와 생명 더 나아가 죽음을 연상시키듯 스칼렛의 감정 또한 사랑에서 질투, 시기, 허세 그리고 증오까지 다변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럼 잿빛(에슐리)과 검정(멜라니)는 잘 맞는 한쌍이 된 반면 스칼렛(빨강) 과 레트(붉은색)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속적이지만 신념만은 타락하지 않은 레트는 천방지축 스칼렛과 결혼하지만 이 후에도 스칼렛은 이미 남의 남자가 된 애슐리에게만 집착한다. 깊은 고뇌와 번민을 느끼던 레트는 어린 딸마저 죽자 결국 스칼렛을 떠나고 결혼은 파경을 맞는다. 스칼렛은 모든 걸 잃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면서 외친다. ‘내일도 또 태양은 뜬다!’

그녀가 찾고 싶은 내일의 태양은 어떤 색이었을까? 이름대로 붉은 색? 다양한 태양의 빛깔 중에서 붉은 색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는 건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게 할 그런 태양, 노란색이었을 게다. 노란색은 밝고 환한 색으로 에너지와 행복을 나타내고 동시에 태양의 힘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망의 색이어서다.

그래서 그런지 태양은 보통 노란색(혹은 흰색)으로 그려진다. 고대인들 역시 태양을 노란색으로 여겼다. 더 나아가 노란색을 띤 황금은 영원, 불멸하다고 믿어 신(神)들의 피부나 뼈는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도 생각했다. 해서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神) 헬리오스는 노란옷을 입고 황금마차를 타고 날아 다닌다. 왕의 무덤 안에서 노란색의 안료가 발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대인들은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고대 벽화에 쓴 노란색은 ‘오피먼트’라는 광물에서 채취했는데 이것은 특별한 연료에 닿으면 검은 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 대안으로 ‘샤프란’ 암술에서 노란색을 추출해 약이나 향수로 사용하고 중국에서는 황제의 옷을 염색하는 데도 사용했지만 이 또한 색이 바래지는 약점이 있었다.

해서 노란색은 배반의 색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은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옷을 노란색으로 칠하기도 하고, 나치는 유대인들의 가슴에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아 구별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8-19 세기에 들어 예술가들은 인물화 의상이나 자연에 노란색을 주로 사용하여 분위기나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가장 노란색에 매료되어 사용한 이는 빈센트 반 고흐다. 노랗게 칠한 집에 살면서 노란 해바라기를 그릴 정도였던 그는 태양의 색, 노란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양, 더 좋게 표현할 말이 없구나. 단지 노란색, 밝은 황색, 옅은 레몬 금색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빛.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태양은 그 스펙트럼대로 무지개를 넘어 수많은 빛깔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색들은 에바 헬러가 주지했듯이 저마다 분위기와 감정을 갖고 있어 우리네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나무의 싱그러운 초록빛이 안정감을 준다면 이글거리는 붉은(상징적) 태양은 열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색이 산업분야에서는 마케팅을 펼치는데에, 또 예술 분야에서는 미(美)를 표현하는데에, 정신분석학에서는 심리 치료에 쓰는 등 그 활용범위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세계적인 색채 전문 기업 팬톤(Pantone)은 2000년 부터 해마다 ‘올해의 색’을 발표하여 그 해의 색상 트렌드를 주도해 왔다. 발표된 색은 그 한 해 동안 디자이너계, 뷰티계, 리빙 분야는 물론 인쇄업계 등 전 산업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에 팬톤이 꼽은 2021년 ‘올해의 색’은 ‘노란색(Illuminating)’과 ‘회색(Ultimate Gray)’이다. 노란색은 태양빛이 스며든 밝음을 나타내고 회색은 견고함을 나타낸다. 해서 ‘밝은 노란색은 긍정과 희망을 의미하고, 견고한 회색은 평온함과 안정감, 회복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희망과 회복’이라는 메세지다.

지난 해 초 느닷없이 침공한 코로나 19에 맥을 못춘 지구촌이 예전에는 미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던 중 연말에 전해진 코로나 백신 소식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이를 무기삼아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때에 ‘노란색과 회색’ 두 컬러의 조화가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일상에 ‘희망과 회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바램 속에 NYT는 이를 두고 ‘터널 끝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에바 헬러는 책에서 ‘노랑은 웃음소리’ 이고 ‘회색은 망각과 과거’라고 했으니 힘겨웠던 시간 잊어버리고 웃음을 되찾아 희망찬 날로의 회복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실상은 회색줄기에 피는 노란꽃인 생강나무로, 봄빛을 알리는 전령이면서 한방에서는 감기와 오한에 좋다하니 이 또한 코로나의 맞적수가 아닐까 싶다. 부디 코로나 19가 ‘희망과 회복’의 ‘바램과 함께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