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13)아프간과 그레이트 게임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점령지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남겼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다.
헌데 알렉산드리아는 영어식 이름이고 이집트에서는 ‘알 이스칸다리야(Al-Iskandariyah)’라고 한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앞에 알(Al)자가 없이 이스칸다리아로 부른다. 그렇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설이 있지만 알렉산더(Alexander)의 앞자 알(Al)이 아랍어에서 자주 쓰이는 정관사(Al)로 오해되면서 탈락한 후 중간 발음의 ‘-ks-‘에서의 k와s가 뒤바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알렉산더의 이름이 이스칸드리아 혹은 조금씩 다시 변형된 형태로 대제국 곳곳에 그 자취를 남기게 됐다.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알렉산더 대제국은 지중해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파키스탄 북쪽 인도 서북부 간다라까지였는데 동방원정의 중심지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였다. 칸다하르(Kandahar) 역시 이스칸다르에서 재변형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 이루어지자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살게 되면서 자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되고 여기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가 태어났다. 이어 헬레니즘이 다시 인도 문화와 섞여 간다라(Gandhara) 문화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간다라의 불교 미술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사천왕(四天王)의 모습으로 변해 그려지는가 하면 힌두교 신(神)들의 장군인 스칸다(Skanda) 또한 위천장군(韋天將軍)의 모습이 되었는데 스칸다 역시 이스칸다르, 곧 알렉산더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말하자면 알렉산더 대왕도 헤라클레스처럼 불교의 신으로 변신한 셈이다. 
  이런 ‘이스칸다르’는 지명뿐 아니라 신무기 이름에 붙여지기도 한다. 러시아의 단거리 전술 탄도미사일과 북한의 신형 탄도미사일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문화 융합의 대명사인 알렉산더가 러시아나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는 이스칸다르 이름으로 여전히 정복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욕망의 그림자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로부터 제국들의 길목이었다. 서쪽에는 페르시아 제국(현 이란)으로 동쪽은 고대 인도제국, 동북쪽은 중국 및 서역과 이어져 있었고, 북쪽으로는 러시아가 있었다.
  특히 엘렉산더 대왕 동방원정의 가장 동쪽의 도시이자 중심지였던 아프카니스탄 남부의 칸다하르는 이 모든 곳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바로 이곳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으로 결성된 탈레반이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열강의 무덤..몽골, 영국, 소련, 미국 줄줄이 굴욕

아프가니스탄은 흔히 ‘열강의 무덤 혹은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당대 최강국들이 이 나라에서 줄줄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대영제국, 구 소련이 모두 그랬다. 이번에 미국 또한 20년 만에 철수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세기에 일어난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영국과 러시아 두 제국주의가 세력 확장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무대로 벌인 대격돌로 오판에 의한 끔찍한 참사였다. 영국은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자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까지 넘본다고 오판한 반면 러시아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중앙아시아로 진출해 부동항이 필요한 자신들의 남진정책을 방해하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3차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점령했지만 결국 1919년에 독립을 허용해 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아프가니스탄도 미국과 소련의 그레이트 게임의 재현 무대가 됐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친소(蘇) 사회주의 정권 붕괴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거의 10년 후 반공산주의세력과 이슬람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소련은 아무 이득없이 퇴각했고 이를 계기로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로써 냉전은 종식되고 미국 세계주도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던 중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닜다. 미국은 이를 감행한 알카에다를 응징하고 아프가니스탄의 테러 기지화를 막기 위해 침공했지만 20년이 지난 후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을 뿐 별다른 성과 없이 철수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세력 공백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과 중국 위구르 분리주의 

 결국 대영제국, 제정 러시아, 소련에 이어 미국마저 손을 떼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번 ‘제국의 무덤’이 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철수가 꼭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게 골치덩어리를 안겨 준 꼴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제국들의 무덤이 이제 중국을 부른다’고 진단했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선 일부가 동쪽으로 길게 삐져나와 중국 신장 위구르와 닿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로부터 이곳의 무슬림 위구르족을 학살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해서 탈레반과 반 탈레반 그리고 현 카불 정권 간의 내전이 전 세계 이슬람 무장세력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게 되면 시리아에서 이슬람 테러집단 IS와 함께 싸웠던 위구르 테러범들이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계속 모여들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탈레반이 위구르 분리주의자들과 연대해 자칫 신장 위구르 독립 시도에 불씨가 될 수있고 이는 이어서 티베트 등 다른 소수 민족들에까지 자극이 되어 또 다른 분리운동에 힘을 실어주게 되면 중국에게는 생각하기 조차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 동안 미군의 아프간 주둔을 놓고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통해 중국을 위협하는 ‘그레이트 게임’을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막상 미군이 철수하자 이 지역의 ‘힘의 공백’이 중국의 서부 변경을 혼돈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를 비난하는 태도로 바뀐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아프간의 덫’ 중국의 선택은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에서 벗어나 중국의 발흥을 막는데 자원을 쏟겠다고 한다. 중국이 ‘아프간 덫’에 빠지는 것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이나 미국처럼 ‘끝없는 전쟁’에 빠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소련의 침공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에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이 미국의 반소련 세력 후원에 적극 가담하면서 중앙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좋은 기회였다. 9-11 테러 보복에 따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또한 중국에게는 영향력 확장의 호기를 제공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늪에 빠진 덕분에 ‘초(超)강대국’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과연 ‘제국의 무덤’의 덫에 빠져들는지 21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은 점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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