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간의 교류가 오늘날처럼 긴밀하지 못했던 옛시절에는 지역마다의 문화나 특산물을 해외원정 후 혹은 외부인에 의해 소개되고서야 알게 됐는데 그나마 왕족이나 귀족들의 영유물이 되기 일수였고 후에 탐욕으로 인한 침략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과일도 마찬가지였다. 오렌지와 레몬, 바나나 등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 레몬은 장기간 항해에 문제였던 괴혈병을 막아주는 치료제로 알려지면서 더 멀리 더 오래 항해할 수 있게 해준 탓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의 해외 식민지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동남아가 원산지였던 바나나는 아랍 상인과 포르투갈 무역상들에 의해 카리브해까지 퍼지게 되었지만 착취의 대명사로 ‘바나나 공화국’이란 어두운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유럽 고급 레스토랑 테이블에 놓이는 파인애플은 환영의 메시지다. 그런 파인애플은 콜럼버스가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가져온 후 최고급품이 되다보니 귀족들이 돈을 내고 빌려와 파티에서 자랑한 후 돌려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세계사를 뒤흔든 25가지 과일’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렇듯 과일들의 전파와 교류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말해주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거리도 만들어냈다.
그 중 사막의 과일이었던 수박에 대해 한때 이런 농담도 있었다. 북한에서 겉만 빨갛지 속은 하얘서 반동으로 낙인된 사과와 달리 수박은 속이 온통 시뻘건 골수 공산당원을 의미한다는 말.
헌데 이 수박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 남북 전쟁 전에는 아프리카계 노예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팔던 대표적인 과일인 수박이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흑인 저소득층이 즐기는 과일이라는 편견으로 ‘흑인은 수박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같은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생겨나면서다.
해서 지난해 2월에는 뉴욕의 한 중학교에 급식으로 수박과 프라이드치킨을 제공한 식품회사가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고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보스턴 헤럴드가 그에게 ‘수박 향을 입힌 치약 써본 적 있냐’며 조롱하는 만화를 게재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던 거다.
이외에도 미국에 동화(同化)되면서 모국의 정체성을 잃은 아시아계를 ‘바나나’라고 지칭하는 건 다분히 피부색을 염두에 둔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말이다. 헌데 이와 유사한 단어로 ‘코코넛’이 있다. 주류 문화에 동화하기 위해 애쓰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계를 지칭하는 속어로 껍질이 갈색인데 속은 하얀 코코넛처럼 피부색은 아시아계이면서 백인처럼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이다.
헌데 이 단어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면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카멀라는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 연설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너희 젊은이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희가 방금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니?’ 라고 했다며 호탕하게 웃은 적이 있었다.
젊은 세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앞선 세대가 일구어논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기존 세대와 연결돼 있음을 피력하려던 의도였지만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선 인도계인 카멀라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 이 단어가 어느 순간 부통령의 소탈한 모습으로 부각되면서 인터넷 ‘밈’ 으로 진화해 퍼지고 지지와 응원으로 변하고 있는 거다.
‘카멀라’라는 이름이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란 뜻이고 힌두교 행운의 여신의 별칭이라고 한다. 헌데 코코넛의 의미가 ‘유령머리’라고 하니 혹 누가 알랴? 귀신도 모를 일이 벌어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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