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잇따라 발생한 휴대용 호출기(삐삐)와 무전기 동시 폭발 사건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심리전에 더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19일 AP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헤즈볼라 대원들은 물론 조직에 속하지 않은 일반 레바논 시민들은 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레바논에선 지난 17일과 18일 헤즈볼라 대원 수천명이 소지하던 호출기와 무전기가 동시에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이은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최소 37명이 사망하고 3150명가량이 다쳤다.
헤즈볼라는 곧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이스라엘은 관례대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익명의 소식통들은 이스라엘 작전이었다고 확인했다.
모하나드 하지 알리 카네기 중동센터 선임 연구원은 폭발이 헤즈볼라 기관 곳곳을 강타한 만큼 “조직의 내장을 찌른 칼과 같았다”며 “표적이 된 사람들을 치료하고 대체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 전투 병력은 10만명 규모로, 이번 공격으로 인력 손실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진 않았다. 문제는 통신망이다. 헤즈볼라의 첨단 통신 시스템의 취약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타격을 줬다.
헤즈볼라는 스마트폰이 이스라엘의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지난 2월 이후 대대적으로 호출기를 도입했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가 직접 대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휴대전화를 폐기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통신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도입한 장비가 되려 공격 무기가 되자 헤즈볼라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엘리아스 한나 레바논 퇴역 육군 장군은 이번 공격을 “헤즈볼라 판 진주만 혹은 9·11″이라고 묘사했다.
안보 문제 전문가인 나지 말라에브 레바논 퇴역 육군 장군은 “통신은 군사 작전 및 통신의 신경”이라며 통신이 지연되면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선 네트워크나 사람을 통한 직접 배송 등 아날로그 방식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나 장군은 “우체부라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며 “(하마스) 야히야 신와르가 가자지구 은신처에 숨어 있게 돕는 것도 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타격은 심리전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군과 총리실에서 정보 분석가로 일한 오르나 미즈라히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헤즈볼라가 다른 통신 방법을 갖고 있는 만큼 통신망을 재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피해는 심리적인 부분이라며 “이런 작전에 당한다는 건 굴욕적인 일이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정보에 얼마나 많이 노출돼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영국 카디프 대학의 정치·국제관계학 전문가 아말 사드는 이번 공격의 가장 큰 영향은 사기를 떨어뜨리고 공포를 심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드는 “단순히 군대에 대한 보안 침해가 아니다”라며 “모든 게 해킹과 조작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헤즈볼라 사회 전체가 극도로 우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사람들이 휴대전화 등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것처럼 평범한 장치가 공격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며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