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의 ‘핵파워’를 거론했다. 비핵화라는 미국과 한국의 공통된 대북정책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오벌오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던 중 북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나는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와 매우 친밀했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그도 나를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매우 잘 지냈다”라며 “그들(과거 행정부)은 (북한을) 엄청난 위협으로 여겼고, 이제 그(김정은)는 핵파워(nuclear power)를 가졌다. 하지만 우리는 잘 지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언이 보도되자 한국 각계는 크게 술렁였다. 정부는 즉각 한국과 미국의 일치된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했고, 외교부는 해당 용어가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정식 핵보유국(Nuclear-weapon State) 명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어만 놓고 보자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북한 핵보유국 인정’으로 곧장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발언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미 논란이 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의 청문회 발언인데, 그는 아예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The DPRK’s status as a nuclear power)”라고 표현을 했다. 단순히 ‘핵파워’라는 단어 하나보다 의미가 한층 분명해 보인다.
공식 핵보유국 명칭은 아니더라도, 짧은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 지명자의 입에서 같은 단어가 나온 점은 가벼이 보기 어렵다. 제도권에 연연하지 않고 직관적 발언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나아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의 경우 의회 청문회에서 그간의 제재가 북한의 핵 능력 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 제재는 그간 비핵화를 위한 대북 협상의 중요한 지렛대로 여겨졌는데, 그 무용론을 제기한 것이다.
일련의 발언을 토대로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북미 협상 재개 및 스몰딜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대북 정책의 원칙인 비핵화 대신 제재 완화를 대가로 한 동결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방식이건 북한의 핵 능력 인정은 대미 협상력 증대로 이어진다. 이 경우 주한미군과 한미연합훈련 등에 연쇄적 영향 미칠 수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1기 각료들의 입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기 행정부 정책 기조를 상징하는 여러 행정명령에도 무더기 서명했다. 이 중에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미국의 핵심 이익을 옹호하고 미국과 미국 시민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둔다”라는 내용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명령’도 있다.
해당 명령을 북한의 끊임없는 대미 본토 타격 능력 추진 및 핵 고도화와 연결해 생각하면 역시 우려할 부분이 많다. 당장 북핵 협상과 관련해 자주 거론되던 ‘미국이 과연 서울과 시애틀을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연상할 수 있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그(김정은)는 내가 돌아와서 기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미 대화가 전무했던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 북미 접촉 전망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다만 미국이 실제 대북정책을 일정 부분 손보거나 북미 대화에 나서더라도 그 시일이 임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4년 만에 귀환한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은 ‘바이든 4년 지우기’를 비롯한 국내 의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등 굵직한 국제 현안에 집중할 전망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도 먼저 치고 나온 것은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전 북한을 안보 위협으로 지목했던 점과 관련해 한 취재진이 바이든 대통령이 유사한 행보를 취했는지를 물었는데,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아니다”라고 말한 뒤 “우리에게는 (다른) 많은 것이 있다”라고 했다. 뒤이어 “북한은 결과적으로 괜찮았다고 본다”라고 말했는데, 맥락상 그에게 일단은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의미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 쪽에서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지도 미지수다. 북한은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 행보를 펼치고 있다.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북러 밀착 고리가 약해져야 미국과의 대화 물꼬도 트일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대화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 역시 따져 볼 부분이 많다. 일단 그간 북한의 대미 메시지는 주로 자위력 강화에 초점을 뒀다.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 등 대외 여건 개선보다는 군사력 증강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한층 신중해진 김 위원장은 확실한 보상 없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 온 ‘친서 외교’ 재현 가능성은 상존한다.
일단 각계의 눈은 이날 발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쏠린다. 이와 관련, 오는 22일 열릴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대미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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