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하버드대의 반유대주의를 문제 삼으며 ‘질병’으로 규정하고 하버드대 측이 반기를 들면서 미국 사회의 문화전쟁이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가 연방 지원금 삭감 압박에도 정책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금 지원 동결에 그치지 않고 면세 지위까지 박탈하겠다며 위협 수위를 한층 높였다.
하버드대는 지난해 기준 532억 달러(약 75조5000억원)의 기부금을 확보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이다.
미국 정치 매체 더힐은 이번 싸움의 결말은 향후 4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고등교육 기관 간 관계 정립에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양측간 대립과 관련해 알아야 할 것들이다.
하버드, 트럼프 ‘반유대주의’ 혐의 배척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를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하버드대가 반 유대주의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정책 변경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반박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교수진 채용 감사, 모든 입학 관련 보고서 제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중단, 반유대주의 프로그램 개편 등을 요구했지만, 하버드대 측은 이를 거부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6일 학교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정부도 집권 정당과 관계 없이 사립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것, 누구를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학문과 탐구 분야를 추구할 수 있는지 지시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가 자신의 요구 조건을 거부하자 20억 달러 규모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그는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하버드가 정치적, 이념적, 테러적 영감을 받거나 테러리스트가 지지하는 질병을 계속 추진한다면 하버드는 면세 지위를 잃고 정치 단체로 세금이 매겨져야 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면세 지위는 전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따른 행동에 달렸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다툼이 법적 다툼으로 격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버드대 처음으로 트럼프에 맞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학생들의 등록을 금지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반기를 든 하버드대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올해 하버드대 등록생의 27%가 유학생이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16일 하버드대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반유대주의에 무릎을 꿇었다고 비난했다.
놈 장관은 또 학교 측에 유학생 비자 소지자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활동”에 관한 기록 제출을 요구했다. 보조금 삭감과 면세권 박탈에 이어 유학생 비자 문제까지 거론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교내 친팔레스타인 시위로 총장이 잇단 사임하는 등 홍역을 치른 컬럼비아대를 먼저 공격했다.
컬럼비아대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4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계약 취소 위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컬럼비아대는 재정 중단 압박에 굴복하며 정부 측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바람과 달리 재정 지원과 정부 계약 취소는 복구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반유대주의 시위가 발생한 10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압박을 강화했다.
코넬대와 노스웨스턴대 등 다른 대학들도 자금 지원이 끊겼지만, 이들 대학은 아직 재정 지원 재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하버드대 저항에 일부는 대학 측의 반격을 환영한 반면 또 다른 편에서는 캠퍼스 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려는 노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컬럼비아대 학사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하버드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시도를 거부하고 하버드의 모든 학생이 지적 탐구, 치열한 토론, 상호 존중의 환경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등 다른 고등 교육기관에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버드대가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자 다른 대학도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에 굴복했다고 비판을 받았던 컬럼비아대도 반트럼프 행보에 가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5일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지원 중단 압박에 굴복했던 컬럼비아대가 뒤늦게 대학의 독립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고 전했다.
클레어 시프먼 컬럼비아대 총장은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방정부가 우리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버드 연방자금 지원 필요한가
연방자금 지원 중단으로 하버드대의 운영 특히 연구 분야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데이비드 월트는 “미국 전역의 연구자들에 대한 자금 지원 취소는 의료 발전을 지연시키고 공중 보건을 위협할 것”이라며 “자금 지원 중단은 의료 연구가 이어진다면 미래에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내 최고 부자 대학인 하버드대는 막대한 기부금을 운영하고 있어 ‘트럼프 폭풍’을 극복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하버드대도 다른 대학처럼 과학·의학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연방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예견됐던 트럼프와 대학 간 전쟁
대학들은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후 어느 정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배경에는 급진 좌파 엘리트가 장악한 대학 권력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시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진보 엘리트들의 워크(woke·깨어있는 좌파) 담론을 척결하겠다며 각종 행정 조치를 동원해 왔다.
다수의 보수주의자는 대학들 그중에서도 아아비리그 대학들을 ‘좌파 이념의 보루’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트루스소셜에 “하버드가 길을 잃었다.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좌파 바보들이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하버드대는 더 이상 이상적인 학문의 장소로 간주할 수 없으며, 세계의 위대한 대학 목록에 포함돼서도 안 된다. 하버드는 증오와 어리석음을 가르치므로 더 이상 연방기금을 받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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