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질을 잘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이해를 거부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가 성해나(31)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프로그램에서 무당 겸 작가인 정홍칼리(35)와 ‘경계 너머의 이야기’ 대담을 갖고 소설 ‘혼모노’의 집필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혼모노’는 성해나의 두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지난해 이효석문학상과 제1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다. 3개월째 판매 1위를 기록(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통계 기준)하며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혼모노’는 신령을 잃은 무당의 정체성 혼란을 따라가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다.
성해나는 “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아 전화 사주와 타로를 보고, 점집도 가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어쩌면 우리가 점을 보는 이유, 신을 숭배하는 이유가 지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욕망의 주체가 ‘점괘를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봐주는 사람’이면 어떨까라는 상상까지 펼쳐졌다”고 전했다.
성해나는 작가로서 ‘진짜’에 대한 의미를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에게 고유한 인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작가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는데 ‘나에게는 왜 그런 것이 없는 걸까’를 느낀 적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처럼 내 것을 찍는 재주가 부족해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삶을 내 방식대로 묘사하는 게 나의 재주라는걸 깨달았다. 그것이 ‘탁본(拓本)’ 같은 글쓰기였다”고 했다.
함께 대담에 나선 정홍칼리는 “무당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의문이 별로 없었다”며 “무당이 되고 나서 (사람들에게) ‘너한테는 신이 없다’는 악플을 많이 받았다. 그제서야 무당에게 절대적 진짜와 가짜가 있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됐다”며 자신의 소설에 이런 생각을 담았다고 전했다.
성해나는 집필 과정에서 고(故) 김금화 무속인의 영상을 참고해 ‘혼모노’ 주인공 문수의 움직임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날 대담에서는 문수가 접신없이 작두를 찾는 ‘혼모노’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성해나는 림킴의 ‘민족요’를 들으면서 살풀이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장면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그는 “혼모노를 여러 계간지에 투고했는데 모두 퇴짜를 맞아 퇴고하면서 오래 고심하며 결말을 썼다”고 했다.
이어 “예속이나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진 사람의 심정을 더 개운하게 써보고, 후회 없이 문수의 마음을 쫓아가 보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썼다”고 말했다.
성해나는 앞으로 약자들을 ‘위대한 평민’이라 명명하면서 이들의 서사를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평범하지만 크고 높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제 화두는 이 거대한 사회에서 위대한 평민들의 서사를 나만의 시각으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앞으로 많이 관찰하고 의문을 품고 싶어요. 항상 제 과제가 아닐까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주최하는 ‘문학주간 2025’는 오는 19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예술가의집 등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