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법률업계의 오랜 수익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변호사가 일한 시간만큼 수임료를 받는 전통적인 시간당 청구제(Billable Hour)가 AI의 급속한 확산으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CNBC는 지난 10일 AI가 계약서 검토와 법률 조사, 문서 작성 등 변호사들의 핵심 업무를 단시간에 처리하면서 영국과 아일랜드 로펌들의 수익구조와 인력 운영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률 소프트웨어업체 클리오(Clio)가 발표한 ‘2026 영국·아일랜드 법률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법률 종사자의 89%가 AI를 사용하고 있다. AI 이용자의 78%는 인력을 추가하지 않고도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고 답했고, 71%는 사건당 처리 비용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런던과 두바이에 기반을 둔 법률금융회사 렉솔런트의 창업자 닉 롤스-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16초 걸리는 일에 16시간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AI가 몇 시간 걸리던 업무를 수초 또는 수분 만에 처리하면 로펌들이 과거와 같은 업무시간을 고객에게 청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실제 영국 대형 로펌 A&O 셔먼은 법률 AI 기업 하비(Harvey)와 함께 대출계약서 검토와 규제 서류 분석 등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했다. 이전에 몇 시간씩 걸리던 일부 업무가 수분 만에 처리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슬로터 앤드 메이도 법률 조사와 문서 분석 등 실무 전반에 AI를 도입했다.
문제는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는 만큼 기존의 수임료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클리오 조사에서 AI를 광범위하게 도입한 로펌 약 5곳 중 1곳은 기존의 청구 가능 업무시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딜로이트가 세계 법률업계 고위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시간당 청구 방식으로 처리하는 업무 비중이 현재 72%에서 향후 2~3년 안에 44%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법률업계에서는 변호사가 투입한 시간보다 업무의 결과와 가치를 기준으로 수임료를 책정하는 정액제와 가치 중심 청구 방식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확산은 신입 변호사들의 업무와 교육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초년 변호사들은 방대한 문서를 검토하고 판례를 조사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AI가 이러한 반복 업무를 대신하면서 신입 변호사들의 전통적인 실무 수련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복잡한 법률 문제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고객 상담, AI가 작성한 문서의 정확성 검증 등은 여전히 변호사의 역할로 남을 전망이다. 특히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환각’ 현상은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 대표적인 이유로 지적됐다.
영국 티사이드대의 만수르 수므로 교수는 CNBC에 시간당 청구제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AI로 업무시간이 단축되면서 기존 청구 방식을 정당화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시대 법률시장의 경쟁력이 변호사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보다 얼마나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K-News LA 편집부>editor@knews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