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열리는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Dog)와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의 경쟁이자,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언(Jane Campion·68) 감독과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44) 감독의 맞대결로 압축된다. 이 두 작품과 두 감독은 작품상과 감독상 모두에서 후보에 올라 있다. 누가 받든 아카데미의 새 역사가 쓰인다.
수상 가능성은 딱 반반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이 시상식의 승자는 대체로 아카데미에서도 그 기운을 이어갔다. 지난해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 랜드’로 골든 글로브 작품상·감독상을 차지한 뒤 아카데미에서도 그대로 두 개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다만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재작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 사례다. 봉 감독과 ‘기생충’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지 못했지만,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손에 넣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골든 글로브는 놓쳤지만 미국 3대 비평가 협회상을 휩쓸었다. 로스앤젤레스평론가협회상 작품상, 뉴욕평론가협회상, 전미평론가협회상 작품상을 모두 받은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역대 6번째였고, 영어가 아닌 작품으로는 최초였다.
일단 두 영화의 작품성엔 이견이 없다.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대형 목장을 운영하는 카우보이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평단은 이 작품이 서부극의 한계를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극복해냈다고 평가하는 것과 동시에 남성성과 남성중심사회와 완벽하게 결별하는 영화라고 극찬하고 있다.
아내를 잃은 연극 배우와 그의 차를 운전하는 기사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설과 연극 그리고 영화를 혼합하는 형식적인 면 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에 관해 얘기하는 메시지 역시 깊이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즈는 “섬세하고 절제된, 압도적인 연출력”이라고 평했고,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이 거장의 영역에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라고 추어올렸다. 이에 하마구치 감독은 ‘침체에 빠진 일본 영화를 되살렸다’ ‘일본영화의 최전선’ 같은 상찬을 받고 있다.
캠피언 감독과 하마구치 감독은 이미 역사를 썼다. 그리고 수상하게 되면 또 다른 역사를 쓰게 된다. 캠피언 감독은 역대 최초로 두 차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연출가가 됐다. 역대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감독은 단 7명. 캠피언 포함 리나 베르트뮬러, 캐스린 비글로, 소피아 코폴라, 그레타 거윅, 클로이 자오, 에메랄드 페넬이다. 이 중 감독상을 받은 건 2010년 ‘허트 로커’의 비글로 감독과 작년에 ‘노매드 랜드’의 자오 감독 두 명이다. 두 사람은 작품상도 함께 차지했다. 만약 캠피언 감독과 ‘파워 오브 도그’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으면 두 상을 석권한 역대 세 번째 여성감독이 된다. 그리고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1993년 ‘피아노’)과 오스카 작품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여성감독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아카데미가 최초로 2년 연속 여성감독과 여성감독 영화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주는 역사가 쓰인다.
‘하마구치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일본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건 하마구치 감독 앞 세대에서 거장으로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구로사와 기요시는 물론이고 일본영화의 전설 구로사와 아키라도 밟아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일본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건 테시가하라 히로시, 구로사와 아키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다만 두 감독 모두 수상엔 실패했다. 하마구치 감독이 작품상과 감독상 중 어느 하나만 받아도 일본감독 최초의 기록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작품상을 받으면, 아시아 감독이 만든 영화로는 ‘기생충'(한국 봉준호), ‘노매드 랜드'(중국 클로이 자오)에 이어 세 번째가 된다. 감독상을 받게 되면 이안·봉준호·자오에 이어 네 번째가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게 아닌 순수 일본영화라는 점에서 ‘기생충’에 이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작품상·감독상을 받는 두 번쨰 사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연예매체 콜리더는 “‘기생충’의 역사적인 수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작품상을 받는 데 선례가 될 것”이라고 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