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개월에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 주민들 가운데 전쟁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등 체념의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유리아 페도토우스키(32)는 전쟁 뒤 매일 밤마다 텔레그램을 통해 불에 타거나 폭발로 숨진 러시아 병사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처음엔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지쳐가는 느낌이 커진다. 그래서 전쟁 뉴스를 듣지 않고 사진을 살펴보는 것도 중단했다.
정보기술회사의 홍보담당자인 그는 “텔레그램 사진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았지만 요즘엔 나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5개월째 이어지고 꾸준히 우크라이나 영토를 잠식하는데 대해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맞서 싸울 결의가 충만하다. 그러나 피해가 커짐에 따라 체념하는 분위기도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다.
지난 주말 동부 돈바스 지방 루한스크 지역의 마지막 보루였던 리시찬스크를 러시아군에 내준 것은 가장 최근의 패배사례다. 크레멘추크에서는 러시아 미사일이 쇼핑몰을 공격해 20여명이 숨지고 오데사의 주거지 공격으로 21명이 숨졌다. 수도 키이우의 주거지도 공격을 당해 방어망이 취약함을 드러냈다.
지난 3월말 키이우를 공격한 러시아군을 물리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나라와 군대에 큰 자부심을 느끼면서 빠른 승리도 가능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 강도가 좀처럼 줄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피해가 늘어나는 것에 화가 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민들의 사기를 걱정해 위험을 가볍게 여긴다는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군복 T-셔츠 차림으로 언제나 단호한 결의를 보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매일 밤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상대로 결의와 자신감으로 가득찬 연설을 한다.
우크라이나 국립영화국 부국장 출신으로 현직 언론인인 세르기 네레틴은 페이스북에 “국민들에 소식을 알리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이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수하면서 리시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리시찬스크도 내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일 한층 더 강력한 무기를 지원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동영상에선 적군을 멋지게 으깨버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리시찬스크를 내준 것을 볼 때) 앞으로 우리 군이 승리했으며 무기를 지원받았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행간을 읽어야 할까 아니면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도 엄청나다. 수백만명이 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면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생활은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번주 국립민주주의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주민의 5%만이 현재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조사됐다.
크라우드펀딩 전문가인 스비틀라나 콜로디(34)는 우크라이나군 지원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으며 전쟁이 가을 이후까지 이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 가운데 러시아와 타협하길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립민주주의연구소 여론 조사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휴전을 위해 영토를 양보하는 것을 특히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9%가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크름 반도 등 모든 영토를 수복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키이우에서 치과 기공사로 일하는 마리아나 호르첸코(37)는 “러시아에 양보해선 안된다. 모든 사람들이 숨지더라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