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2일(현지시간)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재개를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중됐던 글로벌 식량 위기도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엔, 튀르키예(터키)는 이날 튀르키예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흑해 수출을 재개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서명식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올렉산드르 쿠브라코우 우크라이나 인프라 장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참여했다.
합의안에는 오데사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항구 3곳 개방, 이스탄불 공동조정센터 설치, 화물선 운송 안전 보장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먼저 우크라이나 오데사항, 피브데니항, 초르노모르스크항 등 3개 항구를 열고 매달 500만t의 곡물을 수출하기로 했다.
이스탄불엔 합동조정센터(JCC)를 즉각 설치하고 4자 대표들을 파견한다. 대표들은 선박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기 전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는지 등을 감시한다. 확인된 선박 외엔 이 수출 통로를 통과할 수 없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JCC가 개입한다.
아울러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도 허용한다. 유럽연합(EU) 등 대러 제재에 러시아산 곡물 및 식품 수출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다른 제재와 관련해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었다.
합의안은 서명일로부터 120일 간 유효하고 당사자 중 어느 일방이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같은 기간 연장할 수 있다.
이날 합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흑해를 봉쇄한지 5달여 만에 유엔과 튀르키예 중재로 극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14일 이스탄불 4자 협의에서 물꼬를 텄다.
러시아군의 흑해 봉쇄로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최대 수출길이 막히면서 글로벌 식량 위기가 가중된 것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여름 수확이 한창인 우크라이나엔 현재 약 2000만t의 곡물이 발이 묶여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서명식을 열며 “쉽지 않은 협상이었다. 긴 여정이었다”면서도 “전쟁이 시작된 뒤 곡물과 식품, 비료 등에 대한 전 세계의 완전한 접근을 보장하지 않고는 글로벌 식량 위기의 해결책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오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이 협상의 원동력이 됐다”며 “문제는 어느 쪽에 좋은지가 아니었다. 초점은 세계 인류에 가장 중요한 것에 맞춰졌고, 이것은 세계를 위한 합의”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합의는 개발도상국에 안도감을 주고 전쟁 전부터 이미 기록적인 수준의 글로벌 식량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튀르키예 정부가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유엔은 합의 성공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모든 당사자들은 약속 이행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흑해에 등대(beacon)가 있다. 희망의 등대, 가능성의 등대,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구원의 등대”라며 “이 등대가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하고 평화의 길을 안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중재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번 협정으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쿠브라코우 장관은 서명 후 몇 분 만에 올린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스탄불 흑해 협정을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큰 지지”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항구를 다시 여는 것은 글로벌 식량 안보와 세계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속도도 늦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합의 사항을 짚으면서 “우크라이나 항구에 대한 통제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측에 있다. 협정은 곡물 및 식품 수출 관련 선박에만 적용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쇼이구 장관은 서명식 후 자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는 합의안에 명확하게 명시된 의무를 수행했다. 우리는 항구가 허가되고 개방된다는 것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했다”고 확인했다.
서명에 앞서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트위터에 “러시아 선박의 호위도 없고, 우리 항구에 러시아 대표단이 있는 일도 없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합의를 악용해 도발할 경우 “즉각 군사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