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겨울까지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진격하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하르키우 지역에서 단 1주일새 러시아군이 5개월 동안 전투해 차지한 땅을 되찾으면서 서방은 크게 고무되고 러시아는 국내외적 비난에 직면하는 등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다고 CNN이 18일 분석했다.
CNN은 러시아 정부가 총동원령을 내려 우크라이나에 추가 파병 병력을 확보할 지와 늘어나는 군비를 어떻게 감당할 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전술도 효과가 의문시되며 중국과 인도 등이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황 변화에 러시아 어려운 결정 직면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탈환과 남부 공세 강화로 러시아 정부와 국방부는 어려운 결정에 직면하게 됐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느 전선을 우선할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을 확보한다는 푸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크름반도를 포함해 전 국토의 20%에 달한다.
도네츠크를 고수하려면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게 됐다. 러시아군은 지난 7개월 동안 전쟁에서 보급 문제를 드러냈으며 이 문제는 춥고 눈비가 많이 내리는 겨울에 더 어려워진다.
러시아는 이미 도네츠크 지역의 세 전략 거점중 한 곳을 내줬고 다른 두 곳에서도 지난 6월말 이후 전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또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도 병력을 보강했지만 압박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지휘소와 탄약고를 공격하고 드니프로강을 지나는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추가로 투입할 병력이 많지 않다. 최근 만들어진 제3군은 러시아 전역에서 모병한 군인들로 구성돼 있다. 다른 대대전술단들도 큰 피해를 입고 재편성하는 중이다. 러시아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는 보고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르키우에서 무질서하게 철수하면서 대규모 군사장비를 포기한 것은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지휘체계의 고질적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군도 수천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지만 러시아군은 이를 군사적 우위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도네츠크 지역의 약 40%를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6일 돈바스 지역 공격 작전이 “느리게 진행되지만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점진적으로 새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고 말해 러시아군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간접 시인했다.
러시아 내부에서 총동원령 요구가 강해지고 있으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푸틴은 “러시아군의 일부만이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계약병 부대다…따라서 병력 부족 문제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For lack of Russian sense–though their attacks have mostly stopped now. They seem to be plugging away still trying to take Bakhmut, which they have been continually assaulting at great cost for months and months. adapted @War_Mapper map pic.twitter.com/l8wjDkrIQy
— Phillips P. OBrien (@PhillipsPOBrien) September 18, 2022
◆우크라 승리 가능성 보기 시작…러, 전술핵무기 사용 여부 주목
일부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군의 승리가 가능한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승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크름반도를 포함해 모든 영토를 수복하겠다고 말해왔다.
이라크 파병 미군 총사령관으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2월 이래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를 탈환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그러나 크름반도와 돈바스 지방 탈환은 많은 시간과 치열한 전투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군이 모든 영토를 탈환하려면 보급선이 길어지고 군대도 분산돼 반격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승리는 서방의 장비 지원 확대가 지속돼야만 가능하다. 앞으로 수주 동안 협의과정에서 서방의 무기 지원 규모와 내용이 정해질 것이나 일부 서방 국가의 무기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
미 당국자들도 우크라이나군이 역량을 과신한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여전히 사거리 80km 이상의 무기를 지원하길 꺼리고 있다.
일부 서방 당국자들은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전술핵사용 등 예측이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차장을 지낸 로즈 고템묄러는 지난 주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그런 시나리오를 우려한다…우크라이나의 목표는 항복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도 공포”라고 말했다.
전쟁 초기인 지난 2월 푸틴은 러시아의 앞길을 막는 나라는 “역사상 전례없는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유럽중앙아시아국장 올가 올리카는 그러나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하는 건 나토의 직접 개입과 같은 국제적 보복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푸틴을 향해 화학 무기 또는 핵무기를 사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절대 안된다. 그러면 2차 대전 이후 전에 없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술핵무기 사용으로 군사적 이익도 보기 힘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히 러시아군부가 푸틴의 핵무기 사용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본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러시아가 핵공격을 해도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는 꺽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탄도미사일 등 영토를 점령하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의 전력, 상하수도, 통신 인프라스트럭쳐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TV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전력망과 상하수도 인프라스트럭쳐를 파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러시아군도 실제 하르키우의 전력망과 댐을 공격했다.
그러나 전쟁의 향방은 전쟁초기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맞서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에 따라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국가들의 군사 지원이 늘고 있다.
◆천연가스 무기화…올 겨울 효과 여부 미지수
러시아는 유럽에 에너지 위기를 초래해 우크라이나 지원의지를 꺽으려는 전략을 펴왔다.
이달초 블라디보스토크 포럼에서 푸틴은 “우리 이익에 맞지 않으면 어떤 것도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천연가스도, 석유도, 석탄도, 연료도 모두”라고 말했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1년 전보다 10배 올랐으며 러시아는 전쟁 초기 하루 10억 달러씩 벌어들였다. 대러제재는 러시아 경제의 자급력 때문에 장기적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겨울에 러시아의 에너지 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지는 미지수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줄이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막대한 지출을 감수해왔다. 프랑스의 경우 이미 필요량의 90% 이상의 천연가스를 비축한 상태다.
아직 천연가스 도매가가 지나치게 높지만 지난 3주새 3분의 1 가량 하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추가 하락할 것이라며 유럽 각국이 지출하는 소비자 지원예산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또 천연가스와 유가 급등으로 인한 러시아의 추가 이익도 이미 정점을 지난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의 대러 제재가 본격화됨에 따라 내년 2월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이 전쟁 전 대비 17%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휴전 가능성은?…”내년 봄에나 가능할 듯”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휴전보다 겨울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푸틴은 지난 16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나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돈바스 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급할 것 없다”고도 했다.
푸틴은 그러나 인도와 중국이 우려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전쟁 발발 이후 처음 푸틴과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러시아가 처한 곤경에 대해 미묘하게 제한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점을 푸틴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크라이나는 점령된 모든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협상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러시아를 욕보이지 않는 선에서 협상하라는 권고에 대해 화를 냈었다. (키신저는 뒤에 이같은 권고를 철회했다.)
현재 전황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가 휴전을 모색할 이유는 거의 없으며 돈바스 지방의 3분의 1을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한 상태에서 “특별군사작전”의 목표를 바꾸기 어렵다.
페트라우스 예비역 장군은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재앙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병력, 탄약, 탱크, 전투 차량 등등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나토 당국자는 “나토가 겨울 동안 에너지 위기에도 단합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가 계속 선전하면” 푸틴이 내년봄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재고할 것이나 “추운 겨울이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에 그 전에 협상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봄 이후엔 서방과 일본의 에너지 수입금지와 첨단제품 수출 금지가 효과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첨단기술제품 수출 금지는 이미 무기 생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초 예상을 크게 뒤집어왔으며 따라서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의 전황은 전쟁 초기 몇 달 동안과 달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공수 입장이 바뀐 상태이며 러시아군은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