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 ‘터미널'(2004)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이란 난민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7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터미널’의 주인공인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는 결말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했지만, 나세리 본인은 18년간 노숙하던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숨을 거뒀다.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나세리는 12일 정오경 공항 2층 터미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실사영화의 모티브가 돼 막대한 보상금을 받기도 했고, 자선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생의 최후는 18년간 노숙하던 공항에서 맞았다.
나세리의 공항 생활은 1988년부터 시작됐다. 본인이 1977년 이란에서 반(反) 팔라비 왕조 시위를 벌이다 비밀경찰에 고문당한 이후 추방됐다고 주장한 나세리는 벨기에에서 거주하던 중 자신의 친모가 아버지와 불륜을 저지른 영국인 간호사라고 주장하며 영국행을 고집했다.
이민에 필요한 서류가 없어 유럽 전역을 이리저리 떠돌던 나세리는 1988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제지당했다. 이후 나세리는 아예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눌러앉았다.
1995년 벨기에 당국이 입국을 공식 허가했으며 1999년에는 프랑스 당국이 난민용 여권을 발급해주며 정식 이민자 신분을 승인해주기도 했지만, 십수년간의 공항 생활이 몸에 배어버린 나세리는 공항에서 계속 머물기 위해 스스로 ‘알프레드 헤르만 경’이라 칭하며 미친 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알프레드 경’은 나세리의 애칭이 되었다.
공항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직원들과 관광객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나세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터미널 사나이'(The Terminal Man)라는 자서전을 발간했다. 이 자서전은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인 ‘터미널'(2004)의 모티브가 됐다. 당시 영화를 제작한 드림웍스는 나세리에게 30만 달러(현재 가치 약 4억8000만원)를 보상금으로 지불했다.
2006년, 나세리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18년간의 공항 생활을 마치게 됐다. 2007년부터는 자선 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공항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여러 보호소와 호스텔을 떠돌며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 측 대변인에 따르면 나세리는 사망하기 2개월 전인 9월 중순 경 결국 다시 공항 터미널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18년간 지내온 공항에서 생을 마감했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 측은 “나세리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 공항의 상징이자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던 나세리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