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설 속 인물로 마술사이자 연금술사인 파우스트(Faust) 이야기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 중 대문호 괴테가 전 생애에 걸쳐 쓴 역작의 주인공으로 재각색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대명사가 되었다.
모든 지식을 다 갖춘 학자 파우스트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환멸과 우울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이 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가 나타나 젊음을 되찾아 줄테니 대신 영혼을 팔지 않겠느냐고 유혹한다.
이에 파우스트는 무한한 지식과 세속적인 쾌락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교환하기로 계약한다. 지식의 극점을 향하는 욕망과 젊음에 대한 향수로 목숨을 담보로 삼은 거다. 결국그는 많은 죄의 댓가로 지옥 속으로 떨어지면서 영원한 고통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반면 괴테의 작품에서는 신에 의해 구원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최정상을 정복하고 싶은 야망과 동경은 탑클래스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렬할 것이다. 그 중 국제경기 운동선수인 경우엔 더할 지도 모른다. 1992년 의학자 밥 골드먼(Robert Goldman)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당신이 모든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게 해주지만 5년 뒤 사망할 수도 있는 마법의 약이 있다면 복용하겠는가?’ 이 물음에 선수들 절반 이상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이른바 ‘골드먼 딜렘마(Goldman’s dilemma)’라고 불리는 약물의 유혹과 갈등 사이의 기로(岐路)다.
소위 도핑(Doping)으로 불리는 약물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리스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물론 로마 전차 경주 선수들도 여러 약초를 섞어 만들어 마셨다. 북유럽 바이킹들은 버섯의 일종으로 만든 약에 취해 적과 싸웠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피로를 잊게 하기 위해 세칭 ‘히로뽕(필로폰)’을 군인은 물론 노동자에까지 투약했다.
스포츠 도핑의 역사도 전쟁만큼이나 오래됐다. 특히 19세기 이후 유럽에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선수들의 약물 이용도 늘었다. 아편 등의 여러 약물을 복용하다가 20세기 들어 과학 발달에 힘입어 합성 약물이 개발돼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진 거다.
세계 반(反)도핑기구(WADA)에 따르면 전체 선수의 45%가 금지약물을 복용하지만 적발되는 건 1%도 안된다고 한다. 도핑은 육체적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신 스포츠라 불리는 비디오 게임이나 체스, 바둑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1968년 동계 올림픽에서부터 도핑 검사가 실시되면서 일부 선수들은 금지 약물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아직 금지 목록에 오르지 않은 약물을 찾는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뽑아두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해 산소량을 증진시키는 ‘자가수혈’이나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유전자 도핑도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팅 최고 스타인 러시아의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사실이 드러나면서 러시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국가차원의 조직적인 도핑 조작의 전력이 있어 올림픽 출전에 금지 당한 상태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 후 IOC 징계 조치로 올림픽에서 국가이름이 아닌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암호 ‘귀부인 칵테일(Duchess Cocktail)’이라 명명된 작전이었다. 약물을 하기 전 선수들의 깨끗한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 놓는다. 경기가 시작되면 미리 나눠준 여러 금지 약물과 술을 섞은 칵테일을 마신다. 그리고 경기를 마친 뒤 샘플을 제출하면 정보기관 요원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샘플 보관소에 잠입하여 약물 성분이 든 샘플과 미리 받아놓았던 깨끗한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이었다. 허나 이마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러시아의 이번 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칵테일이 있다. 그 붉은 색과 진한 질감은 악마를 닮았고 그 달달한 맛과 독한 도수는 악마에게 영혼을 바칠지언정 떨쳐버릴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을 의미한다고 하는 ‘파우스트 칵테일’이다.
이에 취하면 출세와 명예를 위해 정당하지 않은 일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파우스트식 거래(Faustian Bargain)’에 끌려 양심과 도덕을 외면하기 쉬워져서다. 그럴수록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던진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라는 질문에 더 귀를 귀울여야 할 터 같다. 비록 ‘돈으로 살 수 있다 해도 사면 안 되는 것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