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영국, 프랑스, 구(旧) 소련 전승국 4나라는 패전국 독일을 서쪽과 동쪽으로 나눠 점령했다.
이 중 미국 등 서방 3개국이 점령한 서쪽 지역은 통합되어 ‘서독’이 되었지만 소련 점령구역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로 되어가고 있었다.
헌데 동독 내에 위치한 베를린 또한 동-서로 분단되면서 서(西)베를린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그곳 시민들은 전적으로 서독에서 보내는 식량과 연료 등에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해서 소련의 스탈린은 그나마 서베를린에서 미국 등을 몰아내고 공산화하기 위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잇는 육상 교통로를 1948년 6월 봉쇄해 버렸다.
그러자 미국 등 서방은 이에 맞서 항공로를 이용해 서베를린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실어 보내는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사상 최대 최장 공수작전인 이른바 ‘비틀스 작전(Operation Vittles)’이었다. 소련의 갖은 방해로 인한 악조건에서의 여정으로 많은 희생이 따랐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될지, 언제까지 버틸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던 상황에서 서베를린 시장은 서방 세계를 향해 ‘도시와 시민들을 지켜 줄 것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 중에 베테랑 미 조종사 게일 할보르센(Gail Halvorsen)이 있었다.
27세 중위였던 그는 거의 매일 서베를린으로 날아가 보급품을 전달했는데 어느 날 템펠호프 (Tempelhof) 군기지 공항에서 철조망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20여 명의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껌 두 개를 꺼내 네 조각으로 나눠 건네주었다. 헌데 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빈 껍데기를 돌려가며 냄새를 맡는 것을 보고 안쓰러워진 그는 아이들에게 ‘내일 다시 와서 비행기로 사탕을 많이 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저씨 비행기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고 그는 과자를 뿌리기 전에 비행기 날개를 흔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은 군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음에 약속을 믿고 자신을 기다릴 아이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는 상부 몰래 동료 조종사들과 함께 사탕과 초콜릿, 건포도 등을 모아 옷가지 천이나 수건 등으로 만든 작은 낙하산에 매달아 뿌렸다.
이 후 ‘날개 흔드는 아저씨(Uncle Wiggly Wings)’를 기다리는 독일 아이들은 점차 늘어났고 하루 종일 미군 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때부터 할보르센이 조종한 수송기는 ‘사탕 폭격기(Candy Bomber)’라 불렸다.
한 소년은 직접 만든 낙하산과 자기 집 위치를 직접 그린 지도를 첨부해 사탕을 떨어뜨려 달라고 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러겠다’고 답장한 그는 그 아이의 집을 찾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아이는 다시 답장을 보내면서 ‘파일럿이라면서…. 지도까지 줬는데… 그러면서 전쟁에선 어떻게 이겼대요?’라고 불평하자 할보르센은 초콜릿을 소포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뒤늦게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된 미 공군은 이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리틀 비틀스 작전(Operation Little Vittles)’로 명명해 이듬해 9월까지 서베를린의 아이들에게 23톤의 사탕과 과자 등을 비행기로 뿌렸다. 결국 스탈린은 봉쇄를 풀어야했다.
이러한 폭탄이 아닌 사탕을 뿌리는 미군 수송기는 서베를린 시민들 특히 아이들에겐 자신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는 15년 후 케네디 대통령의 서베를린 연설로 더욱 고취되었다. 1963년 서베를린을 찾은 케네디는 ‘Ich bin ein Berliner,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고 외치며 소련과 동독에 맞서 서베를린, 모든 자유인을 지켜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서베를린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인의 자긍심과 믿음을 갖게 했다.
40년이 지난 1989년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이어서 독일의 통일과 아울러 공산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데는 할보르센이 독일 땅 어린이들에게 뿌린 희망의 씨앗과 케네디가 보여준 신뢰가 밑거름이 되었음이다.
지난 16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화상연설을 통해 아이와 여성이 울부짖는 모습 등의 광경이 담긴 동영상과 함께 ‘포기는 1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바이든이 세계평화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국제적 지원을 호소했다.
서베를린과 같이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은 물론 시민들 모두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할 제 2의 사탕 폭격기는 무엇일는지, 그들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더 깊은 신뢰를 쌓게 할 제2의 외침은 또 어떤 것일는지.
지난 달 게일 할보르센이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전에 그가 설립한 항공학교 캐치프레이저는 ‘나를 뛰어넘는 헌신(Service before self)’이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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