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란 이 말이 지난 해 한국사회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였다고 한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예쁜 여주인공 이영애 ‘금자씨’가 예상을 뒤엎고 느닷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 “너나 잘하세요”. 교도소를 금방 출소한 ‘금자씨’가 착하게 살라며 두부를 건네는 전도사에게 차갑고 싸늘한 무표정으로 두부를 엎어 버리며 던진 한마디. 바로 “너나 잘하세요”
상대방의 말문을 단 한마디로 막아버리고 싶다면. 상대방의 어떤 격하고 날카로운 공격도 단숨에 제압해버리고 싶다면. 고고한 척 위선 떠는 막강 권력 앞에서 통쾌한 일격을 한번 날리고 싶다면. 바로 이 말 한마디를 던져보시라. “너나 잘하세요” 그 순간 게임 끝. 완벽한 승리다.
이 ‘금자씨’의 대사는 ‘너나 잘해’나 ‘당신이나 잘하세요’가 아닌 ‘너나 잘하세요’다. 비존칭과 존칭을 뒤섞어 상대방에게 훈계나 가르침은 필요 없다는 차가운 냉소가 바로 이 필살기의 요체다.
강준만 교수의 말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나자빠지며 이 필살기의 희생자가 되는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에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더 나은 사람일 것이다.
오는 5월 예정된 한인회장 선거를 5개월이나 앞두고 벌써 너댓명의 선거출마 희망자들이 캠프를 차렸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부동산 회사 경영자, 선거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한인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체육회를 대표했던 인물도 있고 재출마를 고심 중인 현직 회장도 있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한인사회를 봉사하겠다고 나선 소위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며 한인 유권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70만을 대표한다는 한인회장을 자임하겠다면서도 한인사회의 대계를 위한 비전도, 전략도, 고민도 찾아보기 힘든 이들 앞에서 ‘너나 잘하세요’를 되뇌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꾼을 고용해 ‘표 동원’ 전략에 골몰하고 상대방의 흠집과 약점수집을 선거 ‘필살기’ 로 여기는 이들의 구태 앞에서 한인 유권자의 ‘필살기’는 ‘너나 잘하세요’의 냉소와 무관심일 수밖에 없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냉소가 유행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존경받는 권위와 리더쉽이 없는 사회에서 바로 ‘너나 잘하세요’의 냉소는 보통사람들의 필살기로 등장해 힘을 얻는다. 봉사와 희생을 가장하는 위선과 가식의 리더쉽은 ‘너나 잘하세요’의 냉소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장래를 고민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힘있는 리더쉽을 가진 존경받는 리더 앞에서 ‘너나 잘하세요’의 냉소는 ‘잘합시다’의 참여로 변하게 된다.
앞으로 5개월이 남은 한인회장 선거 과정은 바로 이 존경받는 권위와 리더쉽을 세우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너나 잘하세요’의 냉소를 ‘잘합시다’의 참여로 변화시킬 수 있는 커뮤니티 리더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김상목 K-News LA 편집인 겸 대표기자>
♠이 글은 2006년 1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존경받는 권위와 리더십이 부재한 한국 사회의 총선 과정을 지켜보다 떠오른 옛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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