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한국 가곡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테너 신영조 한양대 명예교수가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초롱꽃’, ‘기다리는 마음’, ‘황혼의 노래’, ‘그리운 금강산’, ‘님이 오시는지’, ‘보리밭’, ‘내마음’, ‘진달래꽃’ 등으로 특히 사랑받았다. 이전에 소프라노의 노래로만 인식됐던 ‘진달래꽃’은 고인이 부른 후 많은 테너들의 애창곡이 됐다.
고인은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했지만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은 것을 계기로 진로를 바꿔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동급생들과의 실력 차를 크게 느끼고 좌절해 군에 자진입대했으나 ‘내 인생에 음악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계속 정진했다. 복학 후 무리한 연습으로 성대결절이 발병, 2년여 간을 필담으로 의사소통하며 회복해 불굴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1970년 한양대 오페레단 ‘리골렛토’의 만토바 공작역으로 데뷔한 뒤 유학,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과 독일 뮌헨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독일 슈튜트가르트 오페라극장 주역 오디션에 합격하는가 하면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 국제성악콩쿠르를 입상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1975년 여름 오페라 ‘파우스트’의 파우스트 역을 제안받아 일시 귀국했다가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성악계 스타로 떠올랐고, 당시 한양대 총장이던 고 김연준 이사장에게 발탁돼 한양대 교수로 임용됐다.
귀국 이듬해 ‘마술피리’, ‘라보엠’, ‘로미오와 줄리엣’ 등 3편의 오페라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떨쳤고, 이후 국립오페라단 정단원으로 20여 년간 활동하며 ‘라 트라비아타’, ‘리골렛토’, ‘돈조반니’, ‘사랑의묘약’ 등과 ‘춘향전’, 자명고’, ‘원술랑’, ‘원효대사’ 등 창작 오페라까지 수십편의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종교곡에서도 빛을 발했다. 베토벤 ‘장엄미사’, 헨델 ‘메시아’, 바흐 ‘요한수난곡’ , 하이든 ‘천지창조’, 베르디 ‘레퀴엠’ 등의 오라토리오를 1000 여회 이상 무대에 올렸다.
신영조 애창곡집 1, 2, 3, 바로크음악집, 데뷔 25주년 기념음반, 내마음의 노래1, 2, 성가곡집 등 10여 개의 단독앨범을 냈다. 1998년에는 고 콜린 데이비스 경 지휘로 런던심포니와 한국가곡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
자신이 재직하던 한양대 성악과에 국내 최초로 ‘한국가곡문헌’ 과목을 개설하는 등 평생 동안 한국가곡의 부흥과 학문화에 힘써왔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 성악 부분 단독 여름음악캠프를 열어 2006년까지 16년 동안 개최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2009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부인 이순호씨와 딸 신교진·명진·경진씨, 사위 문훈씨 등이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7일 오전 6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