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이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것으로 우려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들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 지적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영국 노동자들이 9.9%에 달하는 물가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과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말도록 촉구해 노동조합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영국 임금은 현재 지난해 상승률 3.6%보다 높은 연 5.5% 상승하도록 돼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영란은행 총재의 우려가 잘못짚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고물가가 임금상승을 초래했지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위스 EFG 은행 수석 경제학자 스테판 게를라흐는 “정책 입안자들이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물가와 임금은 함께 변동하지만 임금 상승은 대체로 과거 물가상승에 대한 반응이지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임금이 기업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오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임금 상승은 시간당 생산성을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임금 상승이 회사 이익 증가분의 큰 몫을 차지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민간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지난 8월 전년 대비 5.2% 올랐다. 이는 지난 7월 5.6%보다 조금 줄어든 것이나 팬데믹 이전보다는 크게 오른 것이다. 애틀란타 연은이 고임 및 저임 산업 일자리 변화에 따른 임금상승을 배제해 추산한 인상률은 7월과 8월에 6.7%로 25년새 가장 큰 폭이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임금상승률은 8.3%에 달하는 물가상승률에 크게 못미쳤다.
유로존 국가들의 경우 시간당 임금이 지난 6월 1년전보다 4% 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 수석 경제학자 필립 레인은 지난주 빠른 임금 상승이 물가상승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많은 연구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노동비용 증가가 물가상승을 초과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뉴욕 연은이 지난 2020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대체로 지난 20년 동안 임금상승에 따라 상품 가격을 올린 적이 없다. 연준 경제학자들도 2017년 노동비용 증가가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실질적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몇 년 동안 거의 없다고 밝혔다. 2017년 논문은 “물가와 임금의 상관관계에서 앞서 수십년 동안의 상승작용 효과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임금 상승이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인상을 제외한 근원 물가 인상에 전이되는 비율이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전 시기에 비해 3분의 1 가량 줄었다고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보고서가 밝혔다.
이같은 변화는 금세기 들어 국제 무역 활성화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 및 물가안정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있다. 외국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일부 국내 기업들이 도산하는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익률이 높은 회사는 생존할 수 있어 임금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외국 경쟁자와 경쟁해도 시장 점유율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 논문이 다른 시기가 물가가 안정된 시기라는 점이 주목된다. 기업들이 지금처럼 임금과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임금상승을 자체 흡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 Fed가 지난달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상품과 용역 국제 교역에 임금 상승이 가격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지만 지난해는 10%의 임금상승이 생산자 물가를 1.4% 올렸다.
일부 기업들은 높은 임금을 제품 가격 인상 이유로 제시한다. 지난 2월 아마존닷컴 최고재무책임자(CFO) 브라이언 올사브스키는 임금상승 비용이 미국의 우대회원 가입비를 월 12.99달러에서 14.99달러로 인상한 배경이라고 제시했다. 이처럼 임금과 물가의 상호 상승 역학이 커지면 중앙은행들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더 공격적 조치를 취하게 된다.
구인이 어려운 고용시장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면 시장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노동자들에 맞서지 않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