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알려지지 않아 2020년 폐기종 진단 건강 안 좋아 코로나 사태 후 두문불출
초현실적 영화로 컬트의 제왕으로 불려 전통 벗어나 새로운 영화언어 창조 평가
컬트의 제왕으로 불린 미국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79)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린치 감독 가족은 16일(현지 시각) 린치 감독 페이스북에 성명을 발표하고 “저희 가족은 깊은 슬픔 속에서 한 인간이자 예술가였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별세했음을 알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이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게 배려해주면 감사하겠다”며 “이제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게 커다란 공허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린치 감독이 생전 자주 했던 말처럼 ‘도넛의 구멍이 아니라 도넛 자체를 봐달라(Keep your eye on the donut and not on the hole).’ 오늘은 황금빛 햇살과 파란 하늘로 가득 찬 아름다운 날”이라고 덧붙였다.
린치 감독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오랜 기간 이어진 흡연으로 2020년 폐기종 진단을 받았었다. 이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엔 집 밖으로 전혀 나가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1946년생인 린치 감독은 필라델피아 미술아카데미를 다니다가 영화에 매료돼 1966년 단편 ‘6명의 아픈 사람들’로 데뷔했다. 미국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초현실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잇따라 내놓으며 미국 컬트 영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감각, 혁신적 음향과 비주얼로 ‘린치적'(Lynchian)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대중의 지지까지 받은 몇 안 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영화적 실험을 통해 주류인 할리우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대표작인 ‘이레이저 헤드'(1977) ‘엘리펀트 맨'(1980) ‘블루 벨벳'(1986) ‘광란의 사랑'(1990) ‘로스트 하이웨이'(1997)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는 현대인의 고독과 공포, 인간 고뇌와 욕망, 꿈과 환멸을 두루 다루며 걸작으로 평가 받았다.
‘엘리펀트 맨’은 흥행에도 성공하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린치 영화의 정점으로 불리며 2000년대 최고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힌다.
1990년에 내놓은 시리즈 ‘트윈 픽스’는 TV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내기도 했다.
‘트윈 픽스’는 그 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 됐고, 1992년엔 극장판으로도 만들어졌다. 린치의 팬이었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 시리즈 세 번째 영화 ‘제다이의 귀환’ 연출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1984년엔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소설 ‘듄’을 영화화했으나 흥행 참패하기도 했다. 당시 린치 감독은 제작사와 극심한 갈등을 겪으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광란의 사랑’으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멀홀랜드 드라이브’으로는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2006년엔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줬다. 2019년엔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공로상을 수여했다.
린치 감독은 영화를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특정 감각을 전달하는 경험으로 도약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는 “관객에게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 예술가”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현대 영화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평했다. 또 LA타임스는 “전통적 내러티브 구조를 탈피해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린치 감독은 영화 극본을 쓰고 연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림과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무대 디자인을 하고 가구도 만들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인랜드 엠파이어'(2007)에선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출연했고, 록 음악에 심취해 앨범을 내고 기타를 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