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있으며 서방의 제재도 전례없이 가혹하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은 어떻게 흘러갈까?
군사전략가들이 전망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지상전투 상황이나 경제제재 효과 등 몇가지 변수를 들어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러시아군이 현재까지 거둔 전과로 푸틴이 현실을 깨닫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영국 왕립합동국방안보연구소 마이클 클라크 전 소장은 “우크라이나군이 패배하지 않는 하루하루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승리를 거두는 셈”이라며 “푸틴이 치르는 정치적 대가가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킹스칼리지 전쟁연구석좌교수 로런스 프리드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괴뢰정부를 수립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수 없으며 러시아 군사력 지원이 없는 키이우(키예프) 괴뢰정부는 정당성이 전혀 없기에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푸틴은 확고한 승리를 선언하기 힘들게 됐다. 에스토니아 외교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제임스 셰어는 푸틴이 합리적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기보다 “더 세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은 군사전문가들이 말하는 전쟁 방향을 결정할 다섯가지 변수들이다.
◆침공군
서방 군사분석가들은 러시아군이 침공 초기 보여준 형편없는 성과에 충격을 표시했다. 10년 이상 현대화를 거친 군대라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쉽게 무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러시아는 합동군 방식의 작전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는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부터 있었던 문제점이다.
클라크 전 소장은 “우리 모두 러시아의 새 군대가 훈련도 제대로 안되고 명령체계도 서 있지 않으며 보급도 취약한 옛 적군과 같이 움직인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러시아군은 작전과 적군 능력 파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공군, 해군, 핵군사력은 부분적으로 또는 전면적으로 현대화됐지만 육군은 과거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처드 쉬레프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영국군 부사령관은 “러시아군이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지금까지보다 효율적으로 군사공격을 할 수 있도록 각 작전요소를 잘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어렵게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초기에 저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작전을 제한적으로 펼쳤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같은 전술을 지속함으로써 저항을 소진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군사 분석가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화력을 집중시켜 도시를 포위하고 중화기 공격을 퍼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쉬레프 장군은 “푸틴이 약이 바짝 올라서 도시에 무차별적으로 대규모 포격을 가해 초토화시킬 것이며 사상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방어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은 보유자산을 총동원해 러시아에 맞서왔다. 쉬레프 장군은 러시아의 느린 진격이 “우크라이나군과 민병대에 강력한 자극제가 돼 용기를 북돋우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싸우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장에서 사기는 비중이 매우 큰 요소이며 우크라이나는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진두에서 이끌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우크라이나 주민이 촬영한 동영상에 등장한 그의 모습으로 키이우(키예프)에 대한 서방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자 러시아가 휴대전화 중계기와 TV중계탑을 공격해 선전전을 막으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더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푸틴에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분석가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군이 조만간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다. 러시아가 전선에 새로운 군사력을 보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붕괴한 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러시아가 키이우에 괴뢰정부를 수립해 우크라이나 서부로 보내고 드녜프로강 동쪽 지역 우크라이나 영토를 합병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소멸하면서 반란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분석가들은 미국이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맞서는 저항군을 지원했듯이 서방국가들이 반란군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란이 강력하게 지속되면 러시아는 보다 많은 군사력을 투입해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대 5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쉬레프 장군은 “푸틴은 그런 군사력이 없다.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대응
서방 정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공보호 등 직접적 군사지원은 배제해왔다. 대신 무기지원을 늘리는 한편 인접 동유럽 주둔 나토 군사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을 폐쇄해 서방의 무기 지원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의 분쟁 개입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서방은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했지만 러시아의 대응에 따라 제재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서방도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 대외정책연구소 셰어 선임연구원은 제재로 푸틴이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로선 서방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지지가 높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대러 제재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난이 닥치면 그같은 지지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러시아가 애매하게 휴전하는 등의 움직임도 서방이 제재를 줄여야 한다는 논란을 촉발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제재 해제는 전범 재판이 시작될 경우 쉽게 취해지기 어려워진다.
◆러시아 국민들의 반응
아직 방향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여론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여론이 러시아 정부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도 알기 어렵다. 푸틴이 갈수록 고립돼 접촉조차 하기 힘든 존재가 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러시아 국민 과반수는 통제된 국영 매체에서 소식을 듣는다. 따라서 자신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정부 때문이 아니라 서방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 당국은 전쟁 반대 시위를 탄압해왔다. 서방에서 호화생활을 즐겨온 부호들이 제재 위협을 받으면서 흔들리는 조짐이지만 푸틴이 신경쓸지는 다른 문제다.
경제난이 지속되면 1990년대 혼란기를 벗어나 안정을 찾게한 푸틴의 대통령 지지 기반을 훼손할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반란이 지속되면서 러시아군 사상자를 증가시켜 푸틴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프리드먼 교수는 “푸틴의 시간이 한도가 없는 게 아니다”면서 “경제난은 이제 시작이다. 몇 주, 몇 달 지속되도록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푸틴으로선 시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평화협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많은 분석가들이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합의를 이뤄내면 푸틴으로선 체면이 손상된다. 젤렌스키 정부를 네오나치 정부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가 수립한 괴뢰정부와의 합의는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러시아가 협상에서 노리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우크라이나의 영토다. 러시아는 2014년 합병한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인정받고 나아가 드녜프로강 동부 상당 지역을 흡수하려 할 것이다.
조지타운대 러시아 전문가 앤젤라 스텐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분할해 서부 지역만 포기하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키이우(키예프)에 친서방 정부가 남도록 방치하는 셈이어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헌법을 바꿔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에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치에 대해 거부권을 갖는 방식이다.
우크라이나는 총선 실시에 동의할 수 있지만 러시아로선 선거결과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조차 자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클라크 전 소장은 1955년 오스트리아 중립화 모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는 방식을 러시아가 선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련은 오스트리아에서 철수하는 대가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헌법적 중립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중립화에 반대할 가능성이 커졌다.
프리드먼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궁극적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면서 “내가 우크라이나인이라면 외국 군대와 미사일 주둔을 보장하기보다 나토 가입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